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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어제 배달을 갔었습니다

by 발비(發飛) 2005. 6. 21.

책이 완성이 되어 김이 배달을 간다기에 별 할일도 없는 것 같다 따라 나섰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어림도 없지만,

포장한 책이라 일산에서 찾아서 바로 출판사로 간다기에, 심심한지 데리고 가기로 했답니다.

일산에서 책을 2000부를 싣고,(그때는 포장집 남성들이 다 운반해주었습니다)

출판사로 곧장 갔습니다.

 

작은 출판사에 책이 가득하더군요.

쌓을 데가 없어서 어찌할까 그랬는데, 역시 김은 천하장사입니다.

김이 미리 쌓여있던 책이랑 박스들을 이리저리 옮기기 시작합니다.

그 출판사는 나이드신 사장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여직원하나가 있는데 우체국에 갔다는군요.

그 할아버지보다야 김이 낫지요. 덕분에 저도 몇 번을 거들었습니다.

 

수레에 책을 옮겨놓고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난 엘리베이터를 잡고.

김은 싣고 그렇게 수십번을 하고서야 책들을 다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무실 가득히 책을 쌓고 돌아오는데. 맘이 좀 달랐습니다.

제본소에서 책이 나갈때는 그냥 나가는 것이었는데,

그리고 쌓여있던 것들이 나가고 나면 시원한 느낌이었는데,

이곳에 있는 책들을 보니, 나가기도 나가지 않기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는 책들이 팔려나가야 하는 거니깐요.

어쩌면 금방 이책들이 주인을 찾아갈 수도 있겠고,

어쩌면 오랜 시간 저렇게 쌓여진 채로 그냥 있을 수도 있겠고,

마치 이미 던져진 운명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어찌해 볼 도리없이 그저 줄을 잘 서서,

누군가의 부름에 대답할 순서가 되길 기다리는 책들,

그 책들이 떨릴 것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본소에 있을때는 누군가 다 잘 될 것같이 단장을 했지만,

결국 책도 세상이라는 곳에 나가면, ...

어느 책은 단 번에 주인을 만나,

주인과 더불어 주인의 새로운 인생에 협조자로 살아가기도 할 것이고,

 누구는  그냥 주인의 책장에 작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살아가기도 할 것이고,

누구는 서점으로 나가기는 하지만, 서점의 책꽂이에서 손때만 타다가 반품이 되고,

다시 서점으로 나가고, 어느날은 페기처분이 될 수도 있겠지요.

 

책들이 출판사에 나가는 순간

그렇게 자신의 운명앞에 부동자세로 서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제본소가 좋습니다.

책을 만드는 과정 중 완성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의 운명을 다 알수는 없는 곳이라 차라리 좋습니다.

그들이 모두 잘 되겠거니 하면서 때로는 생각하고, 때로는 아무 생각도 없고.

그런 곳이라 제본소가 좋습니다.

 

출판사에 쌓여져 있는 책들이 왠지 안타깝습니다.

 

나도 세상이라는 곳에 쌓아놓은 책들 중의 한 권이겠지요.

그런데 신간은 아닌것 같은 느낌입니다. 신간이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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