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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산행 다음날 아침 화장은..

by 발비(發飛) 2005. 6. 20.

산행 다음날 아침은 항상...

 

산행 다음날 아침은 항상 바쁘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다리를 종종 거려야 하니까,

 

늦은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한다.

역시나 6월의 태양빛은 만만치 않다.

항상 나를 검게 타게 하고, 몇 개의 잡티 숫자를 더 늘이고야 마는구나.

(사실, 이것은 나의 산행 주저 이유 중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산행 다음날 아침 화장은 나에게 좀 더 강력한 화운데이션을 요구한다.

평소에는 잡티커버용으로만 바르던 화운데이션을 얼굴전체에 과감히 바른다.

내일은 괜찮은데, 꼭 산행 다음날은 좀 짙게 바르게 된다. 꼭 그렇다.

얼굴 전체에 두껍게 화운데이션을 바른다.

천하무적이다.

어떤 잡티도 그 속에 묻혀버린다.

얼굴에 핏기가 사라지긴 하지만 그것도 방법이 있다. 모든 것은 도구와 기구로 가능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얼굴의 티들을 가렸다.

됐군! 하는 순간 콧물이 좀 났다.

(창피하지만...서도 이야기의 전개상 중요한 부분이므로 고백한다)

아무 생각없이 티슈로 콧물을 닦았다. 그냥 가볍게 닦았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내가 기형이다.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

얼굴 전체는 허옇고, 코는 얼룩덜룩 ....

화운데이션이 티슈에 묻어나면서 한 곳은 내 피부색, 한 곳은 화운데이션 색, 한 곳은 둘을 믹스

그렇게 얼굴은 이상하게 되어있었다.

뭐야?

기껏 바르고 두드리고 ... 했더니, 가벼운 티슈손길에 이렇게 밀려버리다니...

복구를 시작한다.

화운데이션을 적당히 밀어서 닦여진 부분에 두드리고...

그렇게 다시 적당한 명도와 채도를 가지게 만들었다. 그냥 됐다.

거울을 본다. 다시 나를 덮었다.

하지만 조심해야한다.

언제 나의 진짜 피부가 그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나의 잡티들이 다 드러날 수도 있으므로, 난 얼굴에 손을 댈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얼굴에 손을 대고 나서는 꼭 거울을 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눈치채기 전에 꼭 거울을 보아야 한다.

출근을 위해 현관을 나선다.

햇빛이 참 짱짱한 아침이다. 난 얼굴을 손으로 가린다.

덕지 덕지 바른 화운데이션이 햇빛에 다 드러나게 하지 않으려고,

햇빛에게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햇빛에 반사된 내 얼굴을 볼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싶어서

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출근을 한다.

 

난 그런 화운데이션을 참 다양하게 갖고 있다.

어느 순간 내가 가지고 있는 화운데이션을 모든 쓸어 쓰레기통에 버릴 날도 있겠지.

나의 검은 얼굴과 잡티쯤은 "봐라!" 라고 대담하게 내 놓을 날도 있겠지.

화운데이션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쓰는 시간은 참 길다.

 

산행 다음날은 항상 화운데이션을 짙게 바른다.

습관처럼... 짙게 바른다.

내 속의 나를 보고 온 뒤라, 나에게 가려할 부분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보인다.

그래서 난 산행 다음날 화운데이션을 짙게 바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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