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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지리산 나무 껍질 이야기

by 발비(發飛) 2005. 6. 20.
이번 지리산행에서는 유달리 나무 껍질에 눈이 갔습니다.
가까이 보면 이야기가 있을 듯한
그래서 귀를 기울이면 뭔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줄 듯한 나무껍질들의 이야기를
지리산에서 담아왔습니다.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줄려고 나의 눈으로 들어왔는지
일단은 올려놓고 쳐다보기로 합니다.
아마 곧 무슨 이야기든 하겠지요.
그때 들어보기로 합니다.
 

 
기생이라면 기생이고
독립이라면 독립이다.
나도 세상에 기생이라면 기생이고
독립이라면 독립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기생 혹은 독립
어느 것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큰소리를 칠 수 없는 삶
 
 
 
-옹이-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내 속에 작은 움으로 어느새 찾아와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위로 자라고 있는 나에게 그는 곁가지였습니다.
곁가지로 가늘게 자라는 그가 난 끌렸습니다.
못난 가지
하늘로 향하는 가지로 나에게 다가 왔다면 내 자라는 키에 한 척을 보탰다면,
그랬다면 좋았을텐데...
그는 나에게 있어 하늘로 자라길 원하는 나에겐 단지 곁가지였습니다.
 
쉽게 어쩌지는 못했습니다.
내 살속을 파고드는 그도 생명을 가진 한해 한해 나이를 먹은 나무였으니깐요
그가 자라면 자랄수록
내 모양은 우스꽝스러워졌습니다.
결단을 내립니다.
이제 그를 잘라야 할 때입니다.
그가 더이상은 자라지 않도록 잘라내기로 했습니다.
내 모습이 우스워지기전에 잘라내어야 했습니다
그는 내 속에 뿌리를 내려 자라지만, 그는 영원히 내게 곁가지일뿐입니다.
내 옆을 지나가는 이들의 옷을 걸리게 하고
단아하길 원하는 내 모양에 흠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
.
잘라내었습니다.
잘라낸 자리가 보입니다.
그 자리엔 내게 파고들었던 그의 치열함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내 나이테들과 맞물려 자신의 나이테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와 나와의 공존은 그의 쉼없는 작업이었던 것을 잘려나간 자리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내 곁에 없습니다.
어디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그의 옹이가 남아있을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옹이는 아물면서
내게 그의 자리를 남겨놓았습니다.
설사 그가 돌아오더라도 그의 자리는 없습니다.
그가 있었던 자리에는 그의 옹이가 있기때문입니다
난 그가 없는 빈 자리에서
그가 남기고 간 옹이와 함께 난 자라기를 계속합니다.
.
그런데
곁가지는 단 한 번만 생기는 것은 아니더군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살면 살수록
나는 옹이의 수를 늘이는 그런 나무입니다

 
 
 
 
 

 
 
나무를 만지면, 겨울은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따뜻하다.
따뜻함은 겨울에는 겨울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따뜻하다.
나무의 껍질을 만지고 눈을 감으면, 참 따뜻하다.
그리고 꿈틀거린다.
간질거린다.
나무 껍질로 말을 하는 나무는 그의 말을 듣기 위해 다가간 손에게
하염없이 입술을 달싹거리는라
 손바닥이 간질거린다,
잠시 손을 뗄라치면  더욱 간드러지게 내 손을 잡는다
난 나무을 보듬어 준다.
쓸어준다.
나무도 가끔은 그런 나에게 길들여진다.
빠진다.
보듬어주면 줄수록 나무는 제 몸을 데운다.
나에게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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