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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기억---숨쉬기

by 발비(發飛) 2005. 6. 18.
 
퇴근길이었습니다.
전철역에서 무슨 문화마당이 열린다면서,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중학생, 고등학생, 그리고 좀 더 나이먹은 아이들.
 
무대위에서, 무대아래에서 아이들은 숨을 고르는 것이 가장 큰 일인 듯합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가장 힘든 것은 춤을 추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
다만, 숨을 고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지요.
아이들이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전 학교 써클에 가입을 했었고,
그 써클에서 탈춤공연을 하였습니다.
지방에 살고 있었던 저는 여름방학 전국캠프에서 한 번
겨울방학 서울 대회에서 한 번,
써클아이들과 탈춤대회를 나갔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 역할은 우스쾅스러운 할미역이었습니다.
대사도 상당한 수위였었고,
사실 순진한 여고생이 하기엔 좀 그랬지만, 탈이라는 가리개가 있어서
그래도 잘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2등상을 받았더랬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대사가 틀릴까봐 걱정하지도 않았고,
춤의 박자를 놓칠까봐도 걱정하지 않았고
다만 그 순간 숨을 좀 쉴 수 있었으면 하는 그 바램밖에는 없었습니다.
숨을 쉬고 싶다.
무대에서 내려와서도 한참을 숨쉬기에 정신을 팔아야만 했습니다.
오늘 이 아이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의 팔딱이는 가슴을 보면서, 너도 숨이 쉬고 싶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때 이후로 전 무대에 올라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숨을 쉬지 못해서, 숨이 쉬고 싶어서 , 숨 한번 제대로 속 시원히 쉬어보았으면
한 적은 많이 있었습니다.
무대에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전 숨을 쉬기가 힘들만큼 떨리는 일은 많았나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 전체가 그냥 무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한숨을 쉬지 말라고 ...
한숨을 쉬는 버릇은 나쁜 것이라고 합니다.
떨리는 일이 많아서 숨쉬는 것이 불편해서 그럼 꼭 한꺼번에 숨을 몰아서 쉽니다.
그것을 사람들은 한숨이라고 말합니다.
숨을 참지 않으면 한숨을 쉬지도 않을텐데.
자꾸 숨을 참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숨을 쉬는 것을 보면.
한 팀의 공연이 끝날때마다 전 또 한 숨을 쉬었습니다.
같이 긴장을 해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었나봅니다.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돌아서면서, 이제는 숨을 제대로 쉬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숨을 제대로 쉬고 있습니다.
 
제 기억에 저런 무대는 숨쉬기와 연결되어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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