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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映畵

강원도의 힘

by 발비(發飛) 2005. 6. 12.

 
 
홍상수감독의 영화에 아마 빠진 듯 싶다.
강원도의 힘이 결정타라고나 할까?
아니면 시기적으로 이젠 빠질 때가 된 것일까?
 
지숙은 대학생이다. 친구들과 강원도로 여행을 간다. 유부남인 상권과의 이별을 달래기 위해 떠난다. 친구들과의 여행. 여행이다. 여행지에서의 술자리, 그 보다 더 솔직한 곳은 없을 것이다.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다.  그 곳에서 만난 경찰 그와 같이 지낸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지숙과 경찰과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지숙은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경찰과 같이 지낸다. 같이 지내지만,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이 있는다. 그리고 서로를 배웅한다.
상권은 지숙과 헤어지고 후배를 만나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이야기한다. 후배는 상권과 그의 아내를 위해 헤어진 것은 잘 한일이라고 한다. 그리고 상권은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움직인다. 후배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눈이 이쁜여자를 만나고 연결시켜보려하지만 실패. 그리고 하룻밤을 돈으로 산다. 서울로 돌아와선 일상... 교수가 된다. 교수가 되어간다. 그리고 지숙을 만난다. 그리워한다. 그립고 사랑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없다. 전 날 얻어놓은 붕어. 두마리였던 것중 남은 한마리의 붕어를 찾아간다.
 
 
홍상수 감독
 
그의 눈길이 그의 손길이 카메라가 쫓아가는 것들은 나를 안심시킨다.
그래 안심시킨다는 말이 맞다.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나를 안심시킨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과 그들이 해야하는 것들
그것이 다른 사람도 있고 같은 사람도 있다.
홍상수감독이 쫓아가는 사람들은 그것의 거리가 먼 사람들의 이야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개의 삶을 넘나드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 일 , 가족.
우린 누구나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 안에 가족이 있고 일이 있어
사랑으로 품을 수 있도록 그 사랑이 빛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이의 사랑은 가족과 일안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사랑하고자 하면 일과 가족이 슬퍼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랑이 정댱화를 포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른 주소에서 헤매고 있을 수도 있다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이 영화의 만남들에 난 동의한다.
지숙과 상권,지숙과 경찰, 지숙과 친구들, 상권과 지숙, 상권과 후배, 상권과 선배, 상권과 처자, 상권과 교수, 상권과 마주친 여자, 상권과 학생.
이 모든 관계들에 동의한다. 동의한다.
 
지숙과 상권
 
유부남과 학생 그 사이의 사랑, 안 될 말이다. 그런데 사랑한다. 안된다기에 헤어진다. 그래서 아프다. 사랑하는 것이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면, 우리가 아플일은 하나도 없다. 안된다기에 안만나면 그것으로 그들은 최선을 다한것이다, 더 이상 그들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면 싶다. 엇갈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불쌍하니깐... 누구는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 한 집에서 마음껏 사랑하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불쌍하니깐, 그것으로 그들을 덮어주었으면,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었으면.
 
지숙과 경찰
 
둘의 관계는 계산된 관계가 아니다. 다만 일종의 연민으로 이어져있다. 그러니 굳이 육체적인 관계가 필요치 않다. 설사 본능이 요구하더라도 그것의 바탕이 육체적인 욕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관계는 처음 그것으로 충분하다. 만남의 횟수나 대화의 내용에서 깊어지는 사이가 아니라, 누구는 가끔의 경우에 누구는 옆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이는 경우도 있다.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는... 그런 모양의 관계도 있는 것이다. 때로 그런 사람에게는 아무런 이유없이 안기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은 안된다지만, 다만 어깨만 빌리고 싶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지숙과 친구
 
지숙에게 친구는 100% 이해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친구라고 해서 모두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틀리다고 붙잡아 둘 필요도 없는 것이다. 친구라는 것은 지숙과 그의 친구들처럼 묵묵히 지켜보다가, 술 한 판 마시고 술김에 욕바가지로 해주고, 그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그뿐이다.
맘에 안 들면 그때 욕 바가지로 해주고 그것으로 그 일에 대해서는 그만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 성인으로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친구는 모두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같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정도는 믿음이 있어야 친구지... 가끔은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욕디지게 많이 해주고
해장국 한 그릇 민망한 얼굴로 먹으면 되는 것이다.
 
상권과 지숙
 
지숙과 상권과의 관계랑, 상권과 지숙과의 관계는 다르다. 나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연결고리가 많아지는 것이다. 지숙은 어리다, 상권은 더 많다. 당연 얽힌 것도 많다. 그러므로 상권은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비어있는 것을 끊임없이 채우고 싶어하는 동물. 그 동물을 어찌해야할지, 아는 것이 많아서 슬픈 인간. 산을 보더라도 산이 아니라 산에 사람을 채우고 숫자를 세어야하는, 케이블카를 타도 그 원리와 가능무게를 알아야하는 먹물이면서 동물, 살기가 당연 어렵겠지. 당연 불안하겠지. 그것이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것... 빨리 늙어지는 수밖에.. 빨리 빨리 늙을 수밖에...
 
상권과 후배, 선배
 
사람의 주위에 사람, 그 사람들은 배경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끼어들려고 한다. 결국은 자신을 찾아갈 것이면서, 자신밖에 없으면서, 내어줄 것도 아니면서 끼어든다. 끼어들지마!!!! 하고 소리지르고 싶다. 자신의 영역안으로 두 발을 들여놓지 않으려는 사람은 멀리 멀리 보내버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럼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고...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상처를 받는다면, 이처럼 적당한 간격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닐지... 어쩌면 내게서 떠나간 사람보다는 떠나가도록 만든 사람들.. 그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게된다.
 
상권과 그의 아내와 아들
 
누구나 그렇다. 특히 남자들... 누구나 그렇다. 자신에게 처자가 있는 사람들,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처자를 버리지 않는다. 다만 사랑하지만 책임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말한다. 여자는 그런 남편에게는 의지하고 그런 애인에게는 연민을 느낀다. 이 위치가 되면 인간인 상권이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앞서 어떤 자리에 있는 상권을 만나게 된다. 상권을 이해하면서 상권이라는 인간, 그리고 상권이라는 남편과 아버지는 다른 것이 된다. 그것은 상권이에게도 아내에게도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다른 모습이 된다. 모르겠다. 바로 이 부분은 모든 질서의 기초가 되면서도 모든 질서를 흔들어놓는 것이다.
 
 
이 세상사람에게 관계라는 것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더 풍요로울까
인간에게 관계란 것만 있고 규범이나 도덕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자유로울까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것은 없고 감정만 있다면 인간은 자신의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을까...
 
홍상수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이제 이 영화들을 보게 된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들이 만들어졌을 7.8년 전에 내가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면 살수록 좋아지는 것은 긍정이라는 생각이다.
누구의 삶에 대해서도 돌을 던지지 않는 것 ,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인간이 하루를 더 보태어서 좋은 점은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아무튼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어서 좋다.
[오 수정]을 보고 싶은데...
근무중에는 불가능인데... 보고 싶다.
근데 이은주를 보는 것은 좀 두렵다. 아프고 싶지 않다. 내일 일은 내일 맡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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