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나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포기했다.
으쌰!!! 하고 일어나서 변장을 한다.
일요일인데, 그럼서.. 세수안함, 대충 양치만 하고 ...
안경, 모자, 그리고 큰 가방.. 이것으로 변장끝.
일요일도 지하세계를 들어가야 한다는 게 너무 못 마땅하지만,
버스를 타면 차비를 내야한다.
전철을 타면 나의 정기권이 공짜 기분을 맛보게 해주므로...
일요일 하루 난 돈을 번다는 기분으로 지하세계로 들어간다. 또 지하세계...
(난 지하세계를 싫어한다. 그래도 억지로 다닌다. 그래서 난 버스만 타도 up된다)
대학로
무지 많은 사람에, 햇빛까지 가세해서 빈틈이 없다.
얼른 동숭아트센터로 간다.
거긴 항상 섬처럼 조용하니까, 그 곳은 조용하니까.
아쉽지만, 딱 한 장의 표를 끊어서 들어갔다.
극장안에는 아무도 없다, 혹시 나 혼자? 설마 그럴리야...
곧 몇 사람이 들어온다. 그렇지만 텅텅이다. 대학로에서 가장 한산한 곳을 찾으려면
그래도 고맙다.
이 곳이 없어지지 않고 문을 닫지 않고 항상 나를 맞아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왼쪽에는 변장용으로 사용했던 얀경을 벗어놓고
오른쪽에는 아직도 잠에 취한 나의 각성제,,맥도날드커피 그것도 뜨거운 것..
양쪽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다.
항상 좋은 곳
낮에 여기를 올 때는 별로 없으니, 가방에 챙겨둔 카메라가 잘 쓰인다.
이쁜 곳을 찍어야지.. 커텐이 닫히기 전에.
자리가 창이랑 멀어서 더 이쁘다.
누군가가 말했다. 되도록이면 zoom을 쓰지 말라고... 안 썼다.
비치는 햇살과 옹기와 초록.. 이쁘다
저 곳에 내가 서있어서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저 곳에 어울릴만한 사람이 된 뒤 이 세상과 작별했으면 싶다.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사진을 찍자 커튼이 닫힌다.
그리고 난 2시간동안 영화에 몰입을 했다.
영화이야기는 따로 덜어내어, 다른 곳에서...
...
...
극장에서 나오자 또 사람들의 천국이다.
다시 지하세계...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길가에 노점이 한창이다.
물고기를 판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대야에 키우던 붕어생각이 났다.
그래 혼자인 것은 나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같이 있으면서 나누는 것, 물고기를 샀다.
이름이 베트란다.
비닐봉지속에 묶여있었다.
베트는 산소발생기없이도 산단다. 많이 움직이지 않아서 산소가 조금만 필요하단다.
난 빨간 금붕어를 사기를 원했지만, 집에 있는 조그만 화병에 키울 것이므로
금붕어는 안된단다.
파란 배트는 인위적인 고기처럼 생겼지만, 그래도 한참을 골라 가장 물고기스럽게
생긴놈으로 골랐다. 그리고 물고기 밥도 사고, 물푸레도 한뿌리 샀다.
말간 유리병에 온 몸을 노출시키고 있을 베트가 좀 숨을 곳도 만들어줘야 하니까
몰래 졸 수 있는 곳도 필요하고
내가 보기 싫을때 숨을 곳도 필요하니까....
베트 두마리 2*2000
물푸레 1000
베트 밥 5000
그리고 흰돌은 서비스로 얻었다.
모두 만원을 지출했다.
나의 집에 새생명 두 마리가 오는데 10000원이 들었다.
너무 싼 값이라 배트한테 미안하다.
생명값이 그것도 두 마리의 생명값이 만원이라니...
혹 나도 그 정도? 생명값인데 ....
처음에 그냥 찍었다가, 사람도 좋은 배경을 찾아가면서 찍는데 싶어
개봉예정작인 [불안]이라는 영화포스터를 배경으로 한 컷 찍어주었다.
저 불안한 두 남녀와 나의 베트와는 상관없다.
그들처럼 불안한 얼굴이 아니었으면 싶다.
베트가 오래도록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많이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작은 화병에 그냥 오래도록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작은 방에서 안 자라고 살 듯이 베트도 그냥 안 자라고 나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뜻을 같이 하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생명과 한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서로 닮은 것들끼리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하느님!!!
베트가 건강하길...아프지 않기를...
나의 집에 와서 행복하길,,,
제가 생명을 가진 것을 아프게 하지 않기를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셔요..
이렇게 기도한다. 도와주세요...
늦게 시작한 제본녀의 하루는 베트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것으로 마치려 한다.
일요일이 되면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사람은 참 여러가지 모드로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평소에는 제본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여자이지만,
일요일이 되거나, 제본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면
난 마치 격이 다른 삶을 살아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마치 취해있는 사람처럼 난 환각상태가 되는 듯 하다.
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서 기계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느 곳도 내가 아닌 것은 없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퍼~벅.... (0) | 2005.06.14 |
---|---|
다시 제본소에서 (0) | 2005.06.13 |
남십자성 (0) | 2005.06.12 |
이미 만들어놓은 것 (0) | 2005.06.10 |
속상해서 눈물이 납니다 (0) | 2005.06.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