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집이 6권짜리가 다 나왔다.
두께도 상당하고 부피도 크다.
출판사에서 오전에 전화가 와서, 반만 가지고 가겠다고 한다.
출판사의 자리가 좁아서 다 들여놓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장님은 알았다고 말씀만 하시고는 전화를 끊고는 화를 내신다.
갖다 놓을 곳도 없으면서 책을 왜 찍어서 우리 창고를 복잡하게 하느냐 하는 이야기이시다.
사장님 말씀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저기 쌓여져 있는 책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책들은 책으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온갖 이쁜 짓을 다하고 있었다.
하얀 속살을 보이며 속옷을 입고, 그리고 그 위에 겉옷을 입고 이번 시전집은 그 위에 광택까지 진하게 냈다. 그렇게 꽃단장을 하자 말자 출판사에서는 아직 오지말라고 하고,
사장님은 둘 곳이 없다고 투덜된다. 참 싫겠다. 서글프겠다...
사람도 이세상에 태어난다. 책처럼 이세상에 태어난다.
그런데 저 책처럼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짐이 되는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짐이 되는 그런 삶이 있다.
책이 자신의 삶을 의도하지 않았듯 사람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저어하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저 책처럼 자신의 자리를 찾지못하고 어디를 가도 불안한 자리에 앉아있어야 한다.
환영받지 못하는 삶으로 태어난 사람.
이미 만들어진 사람, 만든 것은 내가 아닌데, 만들어진 책임을 내가 져야하는 것.
싫고 불쌍한 일이다.
밴딩까지 하고도 어쩌지 못하는 책들이 너무 불쌍해서 사장님께 말했다.
"창고안에 골판지 없는데 어떡하죠?"
"괜찮아 비닐 싸였잖아.."
"그래도 불쌍하잖아요."
사장님이 눈을 둥그렇게 하고 나를 쳐다보신다. 미쳤구나 하는 표정으로...
난 웃어드렸다. 농담인 척하느라고...
근데 농담 아닌데..
어제는 기대하고 기대하던 책인데 갑자기 천덕꾸러기가 되는 건, 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텐데, 시간이라도 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너무하다.
나에게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함부로 하는 것은 좋은 데 나에게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함부로 하는 것이야 다 이유가 있겠지만. 힘든 일을 마구 시키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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