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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변기에 앉아 화분에 물을 뿌리는 일은 잘 기다리는 것이다

by 발비(發飛) 2005. 5. 9.

변기에 앉아 화분에 물을 뿌리는 일은 잘 기다리는 일이다.

난 화분에 물을 주지 않은지가 일주일은 지난 것 같다.

어제부터 의자에 앉아 있을때면, 뒤에서 나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듯 싶었다

"물 좀 줘!!!"

"목마르다"

그러면서 나의 머리채를 잡고 있었다.

난 그래 그래 대답하는 것으로 머리채를 놓이고

난 다시 다른 일을 한다.

오늘 아침 다른 화분하나가 새식구로 들어왔다

환영회겸, 물을 주기로 했다.

새로 이사 온 화분과 있었던 화분

초췌하기가 말이 아니다.

새로 이사온 화분은 마치 서울에서 시골학교로 전학온 아이처럼

하얗고 분홍색 꽃깥지 피우고 있다.

내 등뒤에 있던 화분들은 비실비실, 마른버짐까지 피었다.

상대적 열등감...

모두 끌고 목욕탕으로 갔다.

물을 준다는 것은 참 지루한 일이다.

 

난 어릴적에 화분에 물을 주는 담당이었다.

파란 물조리에 물을 한 통 담아 한 화분당 한 조리씩 물을 주었다

아마 물 한 조리를 주는 데 걸리는 시간은 1.2분정도

그럼 거의 50개 정도되는 화분에 물을 준다.

물을 주는 손은 상관없지만,

나의 다른 모든 것들이 심심하다.

그럼 난 세상을 본다.

물 떨어지는 것도 보고. 옆의 모과나무 벌레먹는  것도 보고, 움트는 새싹도 보고.

아니면 타일사이에 끼인 흙먼지도 보고...

싫었던 일지만,

그래도 그때 내가 보았던

초록의 나무들, 빨간 노란 열매들, 그리고 개미들

그것들이 기다람의 친구들이었다.

한 조리의물을 다 주기를 같이 기다려주는 친구들....

 

일주일이나 물을 먹지 못한 난 화분들은 얼마나 목이 마를까

서서 물을 주면 다리도 아플 것이고,

또 지루할 것이고...

그래서, 난 변기의 뚜껑을 모두 덮는다.

그 위에 편안하게 앉았다.

샤워기로 화분 하나 하나에 그 오래 전처럼 물을 주기 시작한다,

아주 오랜 시간 물을 준다.

 

물을 주는 것도 기다리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물이 충분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물을 충분히 먹었을때까지 기다리는 것.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다고 기다림을 포기한다. 때로

지루한 것 힘든 것...기다림을 포기하는 이유이다.

기다림을 포기하고 나면, 다시는 기다릴 일이 없어진다.

나와 그가 엇갈렸으니까...

기다려야 한다면, 변기 뚜껑을 모두 내리고 거기에 앉아서 기다리자.

원래 그 곳이 의자가 아니더라도,

그냥 어느 자리 하나 잡아 앉아서 기다리자.

오늘 화분에 물을 주는 것처럼

그렇게 기다려준다면, 난 누구든 무슨 일이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변기 뚜껑 모두 덮고 그 위에 앉아서

난 화분에 물을 준다.

다섯개의 화분에 물을 주는데 30분이걸렸다.

충분히 먹을 때까지,

그리고 난 그들을 목욕탕에 두고 왔다.

충분히 소화시킬 때까지, 난 자리를 비켜준다.

내 손으로 그들의 자리에 데려다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들의 앞에서 등을 보이면 앉아 자판을 두드릴 것이다.

그들은 목이 마르지 않는 한,

나에게 향을 보내고 희망을 보내며 날 보고 있을 것이다.

기다림 뒤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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