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들이
끌어당기는 나라....이탈리아
텔레비젼에서 금요일이라고 방송해준 [지중해].
끝의 40분정도 보았다.
극장에서 보았으면 환상일 것 같은 풍경들이다.
난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한다.
그 스토리를 좋아한다기 보다,
흙이 좋고, 집들이 좋고 , 바다가 좋고, 나무가 좋다.
그리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사람도 좋다.
흙
붉다.
바다가 가까운데도 흙은 푸슬푸슬한 느낌으로 항상 날린다.
이탈리아의 거리나 집들에는
정원이나, 잔디나 풀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유난히 흙들이 많이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발을 약간 끌고 다닌다.
그래서 흙들이 걷고 있는
진행형인 사람들의 걸음을 눈으로 보여준다.
붉고 푸슬대는 흙
바다
지중해의 바다빛은 파란색이다.
코발트색은 아니다.
2월 3월의 동해의 색이 코발트라면,
이탈리아의 바닷색은
코발트에 맑은 물을 몇 방울 떨어뜨려
좀은 묽게 만들어 놓은 듯한
(중학교 입학때
선물을 받은 만년필에 잉크를 갈아넣으려고
유리컵에 물을 담아 만년필을 담궈놓으면
파랑색잉크가 서서히 물에 배어나온다.
바로 그 색)
투명한 파랑색의 바다는
고래가 절대 살 것 같지 않을 것 같다.
집
이탈리아의 집들은 하얀색이다.
벽돌 그대로에 하얀 색을 칠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이탈리아의 항구도시들은
집들이 거의 언덕즈음에 있기 때문에
언덕의 반이 하얗다.
그 사이로 지중해의 뜨거운 해가 비치면,
벽돌의 음영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그래서 미완성의 도시가 펼쳐져 있는 느낌이다. 미완의 집과 마을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무
마을이 끝날즈음에는
야트막한 산, 언덕이라고 해야 하나. 산들이 있다.
그 산들에는 올리브나무가 있는데,
올리브나무는 그리 잎이 무성한 나무는 아닌 듯 싶다.
듬성 듬성보이는 올리브 잎들.
바탕의 흙은 여전히 붉은 색이고,
풀은 잘 보이지 않는데,
올리브나무만이 또 듬성듬성 심어져있다.
올리브 색깔은 초록이라기보다,
회색과 초록색을 섞여놓은 회녹색,,,
우리는 올리브색이라고 한다.
흙은 붉은 데 회녹색...
사람
사람들은 약간 검다. 그리고 반짝인다.
머리가 검고 곱슬머리가 많고 손은 크다.
옷은 무채색으로 주로 입는 편이다.
그리고 헐렁하게 입는다.
무명천으로 만들었는지 구김이 많이 가 있다.
말하는 소리는 크다.
클 뿐만아니라, 발음은 거칠고 빠르다.
그들은 항상 큰 손으로 손짓을 하면서 말한다.
옥타브는 테너에서 바리톤으로 넘나든다.
눈코입이 커서 얼굴에
희노래락이 정말 실감나게 보인다.
파란바다를 앞에 두고 얕은 산들이 둘러쳐져 있고,
그 산은 붉은 색 흙에
회녹색 올리브나무들이 아주 듬성듬성 심어져 있다.
그 아래로 벽돌무늬가 선명한 하얀 집들이 빽빽하다.
아치문 현관으로 검은 사람들이 뛰어다닌다.
조용히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멋진 색들의 조화이다.
어릴 때 구제품점에서 옷을 많이 입었다.
엄마는 이태리 니트 티를 많이 사주었었다.
니트티의 색깔이 단색인 것은
별로없었던 것 같다.
어릴 때 생각에도 색이 참 이뻤다.
지금도 구제점에 가면 자주 볼 수가 없어서 그렇지,
이탈리아 니트 티를 보면 참 이쁘다.
그 사람들이 패션감각이 있는 것은,
그 쪽이 발달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색깔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일것이다.
난 외국을 가본 적이 없다.
그래도 이탈리아 좋은 이유는 ...
작년에 타비아니형제감독의 영화제를 보았었다.
아마 열 몇 편은 된 듯 싶다.
그때 난 이탈리아에 빠졌다.
오늘 지중해를 마지막 40분 밖에는 못 봤지만,
난 감동했다.
땅 가운데 있는 바다...
그 바다 가운데 있는 섬.
앞의 이야기는 모른다.
내가 본 것은,
전쟁중에 소대가 어느 섬에 갇히게 된다.
3년이란다.
그 곳에서는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가고
여자들만이 있는 곳이다.
한 소대는 그 곳에서 3년동안 그 섬의 사람으로
살게 된다.
돌아갈 자신들의 나라를 꿈꾼다.
자신들의 자리가 아닌 곳에서 살아가면서,
3년만에 바깥세상은 전쟁이 끝난 뒤,
우연히 발견된 그들은 자기의 나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 창녀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를 제외하고는..모두 자신들의 나라에서 자신들이 이룰 꿈을 꿈꾸며...모두 돌아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늙어버린 소대장이 그 섬을 다시 찾았다.
그 섬에는 남아있던 남자와 자신의 나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섬으로 돌아온 상사가 있었다.
누구의 선택이 옳았을까?
땅들에 둘러싸인 곳에 바다가 있다.
그 바다 한 가운데에 또 땅이 있다.
땅 가운데는 사람들의 바다가 있다
사람들의 바다 가운데는 또 땅이 있다.
세상이라는 바다와
나라는 섬은 그렇게 말려져 있다.
나라는 바다에 또 다른 나라는 섬이 있고
그 속에 또 수많은 나..
끊임없이 바다를 만들면서, 또 섬을 찾아가는
끝도 없이 섬을 찾아가는
지중해인 우리들의 이야기.
결국은 세상도 큰 바다이지만,
나도 거기에 못지 않은 바다이다.
때론 크고 넓은 가능성을 가진 나라는 바다
때론 폭풍과 파도가 출렁이는 나라는 바다
누군가의 배를 뒤덮었을 나라는 바다
그 바다 가운데 섬으로 있는 나를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
지중해는 그런 곳일 것이다.
누구는 섬 하나를 찾고 거기서 안주하고.
섬하나를 찾고도, 또 찾아헤매고
찾아내면 낼수록 섬은 바다속으로 깊이 숨고
끝도 없는 길...
갑자기 생각나는 말
섬 島가 道가 될 수도...
나라는 바다에서 진정한 섬을 찾는 행보는
道를 찾아나선 이의 발걸음과 같을 것이라는
갑자기 골치아픈 생각이 든다.
그럴 것이다.
자신이 살아가야 할 섬을 찾는 것은
자신이 알아야 할 道의 길을 찾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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