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담글 수 있는 물을 찾아 안동에 있는 학가산 온천을 다녀왔다.
그곳에는 노천탕이 있고, 꽤 넓고 깊은 냉탕이 있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든 물에 몸을 얹어두고 싶기도 하고, 물 속에 몸을 눌러 보고 싶기도 하고, 발을 조금 움직여 물 속에서 조금 전진하고 싶기도 했다.
우지현작가의 <풍덩 완전한 휴식 속으로> 다 읽지도 않았는데, 나는 참을 수 없이 물 속에 잠기고 싶었다.
물속에서의 적막과 고막으로 들려오는 울림, 몸의 구석구석 밀고 들어오는 수압까지, 물의 섬세한 친밀함을 느끼고 싶었다.
'넓고 탁 트인 강과 마주하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고,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모든 걱정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폭포수는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주었고,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면 묵은 피로가 스르륵 녹아내렸다. 또 고즈넉한 호숫가에서 잔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마음이 한없이 평온해졌다. '
수년전 상처를 입고 떠났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끝나고 이베리아반도의 바다를 돌았다. 어떤 관광지가 아닌 그저 삼면 바다를 돌고 싶었다. 곳곳의 바다를 보면서 물의 움직임을 보면서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곳의 조그만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반드시 수영을 배우겠다고, 그래서 저 바다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했다. 수영을 배우고 나서 나는 몸을 물 속에 깊숙히 담그는 법을 알게 되었다. 어느 정도 물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
그랬다.
' 물속에서 나는 투명해진다. 나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내 신체의 특징이 무엇인지, 무슨 자세일 때 편한지, 근본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지, 한계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내가 얼마나 약하고 또 강한 존재인지. 그동안 차마 알지 못했던 나를 수영하는 과정에서 파악하게 된다.'
학가산 온천에 갔을 때 운이 좋게도 비가 많이 왔다.
대충 씻고 야외노천탕으로 갔다. 비 때문인지 아무도 없었다.
바로 냉수탕에 들어가 물을 깔고 누웠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여 햇빛은 없었는데, 반짝 반짝 빗물이 별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반짝이는 별들이 얼굴에 떨어지고, 벗은 몸에 떨어지고, 남은 별들은 물 위에 떨어지며 수백 수천개의 왕관들을 만들었다.
파티처럼 들뜬 시간이었다.
한참을 반짝이며 떨어지는 빗물별을 보다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물속에 몸을 최대한 깊게 넣어보았다.
빗물 떨어지는 소리, 탕에 물 들어오는 소리, 내 몸 속에 피 흐르는 소리, 이 소리들이 이명처럼 들렸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그렇게 물 속에 있었다.
눈물이 날 때면 눈물 속에 몸을 푹 담그는 수 밖에..., 눈물이 멈췄다.
'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말처럼 우울은 물에 녹는다. 기분이 찌무룩할 때 따뜻한 물로 샤워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기분이 달라진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욕실에 들어가기 전보다 월등히 기분이 나아진다. 집에서 샤워만 해도 그러할진대 수영장에 가면 효과는 배가 된다. 물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나쁜 감정들이 씻겨나가고, 이리저리 헤엄치다 보면 무거운 마음이 가벼워진다. 우울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해도 옅은 농도로 희석된다. 물에는 그런 정화의 기능이 있다.'
우지현작가의 글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맘에 든다, 나랑 결이 맞다는 거겠지.
세상 어디엔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
<잠시 딴 소리>
맞춰지는 것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든다.
처음부터 맞거나 견디거나 맞는 척하거나 뭐 그런거지. 사람과 사람이 맞춰지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다.
어렸을 때는 맞는다,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아마 20대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30대에도 그런 생각을 안 한 것 같은데, 그저 맞춰지지 않으면 내가 노력이 부족했나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세상이 나와의 반대지점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사방이 맞춰야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저 나는 그들과 분쟁이 없이 하루를 살아가는데 혼이 쏙 빠졌다.
40대를 지나고 50대도 반 이상을 산 지금, 나는 단언컨데 안 맞는 사람이 맞아지는 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나이가 많아서 고집이 세서 그렇다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세상에는 나와 맞는 부류가 있고, 절대 섞일 수 없는 부류가 있고, 어느 정도 허용되는 부류정도가 있는 듯 하다.
20대때, 30대때, 40대때, 50대때, 왜 저래라고 생각했던 사람에 대해 달라진 적이 없는 걸 보면 그렇다.
그때 왜 저래는 아직도 왜 저래이다.
그저 내가 좀 둥글어서 맞는 사람이 어느정도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
가끔 이 세상에 나와 맞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아니면 영원히 나와 같은 부류를 못 만나서 홀로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그냥 저냥 살게 되던지.
난 요즘 가끔 기도한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누군가가 저절로 이해가 되는 그런 시간을 살게 해주세요.
<잠시 딴 소리 끝>
정말 다행이다. 운이 좋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연히 우지현 작가의 <혼자 있기 좋은 방> 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때와 같은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혼자 있기 좋은 방> 을 읽고, 작가의 글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마음에 많은 공감이 되었기에,
다음 책을 찾은 것이 <풍덩 완전한 휴식 속으로>이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은 글밥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좋았고,
<풍덩 완전한 휴식 속으로> 는 글밥이 적었지만 이건 물에 관한 감각적인 이야기였으니 길 필요가 없었다.
멋진 글, 좋은 글, 어려운 글, 수 많은 글들을 가까이에서 함께 했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걸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나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더랬다.
이제는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지금 살고 있는데, 이렇게 진정 책에 마음을 내주고 있나 싶다.
어떠한 물이던, 물이 필요하면 가까운 곳에 내가 다가갈 있는 물에 몸을 맡기듯,
도서관에 꽂힌 수천권의 책들을 지나가다 그저 손에 걸리는대로 읽는 지금의 독서가 만든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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