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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페르난도 페소아] 이리로 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by 발비(發飛) 2023. 1. 29.

인간은 '의지'라는 것을 가져 다른 동물보다 나은 점이라고도 한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것이 '의지'말고도 많은 것이 있을 것이다. 

 

직립보행을 한다는 것

의지와 함께 사고를 한다는 것

그에 따라 도구를 사용하고 발명한다는 것

계획을 하고 반성을 한다는 것

 

부모님이 주양육을 했던 강아지가 아니라 내가 주양육을 한 반려동물은 감자가 처음인지라 낯선 눈으로 동물을 보게 된다. 

 

나와 비교하며.

나와 다른 점을 생각하며

나와 같은 점을 생각하며

 

-이른 새벽이면 일어나 밥을 찾는다. 배워야 할 점이다.

나는 아침잠을 좋아하고, 아침에 개기기를 좋아하고, 아침밥에 별 취미가 없다. 

 

-끝까지 요구한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감자는 끝까지 요구한다. 나의 강압적인 제제가 있지 않는 한 짖다가 애교를 부리다가 포기했다가 

어느새 그걸 또 하고 있다. 내가 잠깐 경계를 늦추면 요구한 것을 기어코 하고 있다. 

나는,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안 그렇고, 그때그때 다른 편인 것 같다. 

 

-받아들인다. 포기한다, 교육된다

 이 세가지 말이 같은 의미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데 감자는 이렇게 저가 처한 환경에 적응한다. 

나는 나로 돌아가는 강력한 자기장이 있어 결국 거기에 있는 느낌이다.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결국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혼자 있으면서 그리워하고,

함께 있으면 혼자 있기를 그리워하고,

길들여지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생각을 둔다. 

 

감자는 그런 점에서 강하다. 

이른 아침 기어코 나를 깨워 밥을 먹고, 쉬를 하고 응가를 하고, 내가 책상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책상 아래서 깊은 잠을 잔다. 

그리고 곧 개운하게 맑아진 눈으로 나를 볼 것이다.

 

조금전 시크릿이라는 전자책으로 주문했다. 

의지(意志)가 아니라 의지(依支)가 필요한가보다. 

 

이럴 바엔, 그렇게 된 바엔 이렇게 해 보자.

의지가 약해진 바엔 겸손해보자. 

약한 의지로 버티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겸손이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겸손하게

남아있는 것들에게라도 감사하기로 하면 어떨까. 

 

내게 남아있는 것들, 내게 기쁨을 주는 것들, 내게 만족을 주는 것들

따뜻한 집. 겨울패딩들. 내 입에 맞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세끼, 내게 맞는 매트리스와 소파, 아이패드프로와 아이패드 미니 그리고 아이펜슬, 반려견 감자, 반려식물들, 문장사전 ........................, 많다. 

 

많이 가졌다. 

 

필요한 것들은 나열하지 말기로 하자.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가지고 싶은 것들일 확률이 높으니, 말을 해서 견고해지지 않도록 한다. 

 

오늘은 페르난도 페소아의 시에 의지한다.

 

 

이리로 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리카르두 레이스(페르난도 페소아 이명)

 

이리로 와서 내 곁에 앉아, 리디아, 강변에

조용히 그 물길을 바라보면서 깨닫자

인생의 흘러감을, 그리고 우리가 손깍지를 끼지 않았음을. 

          (우리 깍지를 끼자)

그리고 나서 생각하자, 어른스런 아이들로서, 인생이

흘러가고 멈추지 않음을,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음을, 

멀고 먼 바다로 향하는 것을, 운명 가까이.

          신들보다 더 멀리.

깍지를 풀자, 우리 지칠 필요는 없으니.

우리가 즐기든, 즐기지 않든, 우리는 강처럼 흘러간다.

고요히 흐를 줄 아는 편이 낫지

          커다란 불안들 없이.

사랑들 없이, 증오들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열정들 없이도, 

두 눈을 쉼없이 굴리게 하는 질투들 없이도,

조심함 없이도, 그게 있다 해도 강은 항상 흐를테고,

          언제나 바다를 향해 갈테니.

평온하게 서로를 사랑하자, 우리가 원했다면

키스하고 포옹하고 어루만질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보다 나은 건 서로의 곁에 앉아서 

          강이 흐르는 걸 듣고, 또 바라보는 거란 걸,

우리 꽃을 따자, 너는 받아서 무르팍에

놓아둬. 향기가 그 순간을 감미롭게 하도록-

우리가 평온하게 아무것도 믿지는 않는 이 순간

          타락하는 천진한 이교도들.

적어도, 내가 먼저 그림자가 된다면, 너는 나중에라도 날 기억하겠지

내 기억이 너를 타오르게 하거나 상처 주거나 감동시키는 일 없이,

왜냐하면 한 번도 깍지를 낀 적도, 키스를 한 적도 없고, 

          어린 아이들 이상은 아니었으니까.

네가 나보다 먼저 저 음울한 뱃사공에게 은화를 건네기 전에

너를 기억하며 내가 고통스러울 일은 없을 거야.

너는 내 기억에서 달콤할 거야 너를 이렇게 기억할 때면-강변에서, 

          무릎에 꽃을 둔 슬픈 이교도

(1914년 6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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