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Identidad
옥타비오 파스
뜨락에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린다.
저금통 속의 동전 한 닢처럼
바람 한 자락에 새 깃이
문득 어디론가 사라진다.
어쩌면 새도 없고 나도
뜨락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아닌지 모른다.
(주) 현실 세계가 불교에서처럼 환상, 허상이라면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인가? 그 사람인가? 여기엔 진짜 아무도 없는게 아닐까?
옥타비오 파스는 장자의 호접몽을 읽고, 나는 옥타비오 파스의 시, <주체>를 읽는다.
제목이 주체? Identidad, 정체성? 시 제목이 이상하다.
옥타비오 파스의 <손으로 느끼는 삶> 이라는 시를 두고, 2008년에 쓴 '나'와 지금의 '나' 는 <주체>라는 시의 '어쩌면 새도 없고 나도 뜨락에 서 있는 그 사람이 아닌지 모른다'는 시인의 말처럼 누가 누구인지, 나였는지,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이해하려고 온힘을 집중해서 내가 쓴 말들을 읽는다. 대체..., 하는 생각이 들어 웃는다.
그림을 그렸다.
옥타비오 파스의 <손으로 느끼는 삶>이라는 시를 읽고, 나무를 생각했다.
나무의 뿌리를 손으로 그렸는데, 흙을 꽉 잡고 있는 손이어야 하는데, 늘 그렇듯 못 그려서 이상하게 되었다.
못 그리는 건 당연하다 생각한다.
옥타비오 파스의 <손으로 느끼는 삶>이라는 시를 읽고, 나무를 생각했다.
-잠시 딴 소리-
2008년에 이 시를 읽은 나는,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함께 놓고, 내가 너라고 부르기 시작한 순간부터 특별한 '너'가 되었고, 내 안의 '너'가 되었고, '너'는 나의 '너'가 됨으로 내게 완전한 객체로서의 '너'로 독립한 거라고 말했다. 내 안에 있는 '너'를 '너'라고 규정하고, '나'와 '너'를 완전히 분리시켜 내 몸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너'를 타인으로 의식하고 긴장하며 살 떨려했다.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말들이지만, 내가 한 말이라 그런지 나는 알겠다.
나는 너를 꿀꺽 내안에 삼켜놓고, 내가 먹고, 생각하고, 말하는 동안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반응하는 너의 존재는, 내 몸 밖에 있는 '너'와는 다른 존재가 되는거다. 그때 사랑한 방식인가?
잠시 딴 소리 끝-
바람 한 자락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새 깃처럼
어느 시간의 나는 사라져버리고,
지금의 나는 커피를 마실까? 티를 마실까? 우유를 마실까?가 가장 중요한 결정이 되었고,
아직 담지도 않은 할라피뇨 피클을 어디에 둘까 하는 것이 큰 고민이 되었다.
미래를 살지 않기로 하고, 과거에 살지 않기로 하면서 나는 삼시세끼만 생각한다.
너무 다른 나를,
이모티콘 수업 중 캐릭터 연습을 해야 하는데,
캐릭터는 사라가 그리는 것임에도 수업은 내가 듣고 있으니 나도 그리긴 그려야지 하며 호랑이의 웃는 얼굴, 우는 얼굴, 놀란 얼굴을 그리다가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어 멍했다.
내가 읽은 시 중에서 가장 모르겠는, 얼게 만드는 시인인 '옥타비오 파스의 <태앙의 돌> 이라는 시집을 꺼냈다.
호랑이 얼굴을 그리다가 옥타비오 파스를 읽는다. 이것 또한 바람 한 자락에 사라진 새 깃털이지.
파스의 시를 읽다가, 나뭇잎이 미치도록 많은 나무를 그린다.
그림은 그 분이 오셔야 그릴 수 있는데, 파스의 시와 함께 그 분이 오신 거다.
주체,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 라는 시다.
참으로 딱인 시다.
시인이 달아놓은 주석처럼 어쩌면 여기에,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없는 것은 아닐까?
그 둘 모두 별거없는 사람이라 존재하지 않는 착각이라 해도 섭섭할 것 같지는 않다.
시인의 '새'이던 장자의 '나비'이던
뭐가 문제지 싶은 좀 들뜨고 이상한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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