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별명이 전인순이었다.
들국화 전인권 빠순이기도 했지만, 뽀글머리를 하면 왠지 힘이 나고, 용기가 나 센 여자가 된 듯 마음이 든든했다.
그래서 뽀글뽀글하게 파마를 하고 다녔다.
헤어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했다.
바람둥이 소설가는 편집자답게 차분한 단발머리가 어떠냐며 본인의 취향을 이야기했고,
함께 일했던 여자 동료는 용기가 부럽다고 했다.
이스탄불공항 출입국 직원은 엄지를 올리며 뽀글이를 지지했고, 업무차 만난 어느 남자는 첫 미팅에서 뽀글이라서 쫄았다고 했다.
한동안 뽀글이를 꽃으로, 나뭇잎으로 그려 나를 표현했는데 맘에 들었다.
오늘, 지금은 펌을 하지 않은지 2년은 넘었고, 바가지 머리다.
-잠시 딴 소리-
여기 다니기 전에 다니던 미용실도 십년은 다녔는데, 대학로 근무할 때 다니던 미용실의 실장님으로 계시다가
장안평 근처에서 개업을 해서 그곳으로 따라갔다.
오래 다니다보니, 따로 밥 한 번 먹은 적은 없지만, 그 분이 아버지와 척을 두고 사는 이야기부터,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화해를 하고, 또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까지 알게 되었고, 나도 회사를 몇군데 옮기고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고 등의 일들을 나누었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고, 올 블랙에 징이 박힌 신을 늘 신었던 그 분이 장안평의 미용실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이민을 가서 작별했다.
한국에 있기 싫다고 했다.
내 머리를 이렇게 저렇게 갈 때마다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주었다.
숏커트, 노란 머리 염색, 호일 펌... 당시에 유행하던 것들을 늘 미리 해보길 권했고,
재미있었다.
과감하게 맘대로 하라고 해서 내가 좋다고 했다.
호시님, 가끔 그 분이 생각나고, 그리울 때가 있다.
-잠시 딴 소리 끝-
지금 다니는 미용실을 십년이 좀 넘은 것 같다.
홍대에서 1인 미용실을 막 열었을 때 다니기 시작해 거기서 8,9년, 지금은 망원동에 미용실을 열어 거기로 다니고 있다.
전형적인 초식남인 망원동 원장님은 호시님과는 성격이 정반대이다.
뽀글이 머리를 할 때마다 원장님은 반대, 반대! 본인의 성격처럼 차분하고 가지런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이런 거 어때요 서치한 사진을 보여드리면, 늘 한단계 톤다운하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예쁘게 만져주신 머리는 한달쯤 지날 때 즈음이면, 마음이 끌린대로 앞머리, 옆머리, 뒷머리를 마구 잘라 들쭉날쭉해져서
가도 별말없이 큰 사고가 아니라며, 이정도는 괜찮다며 온화한 웃음을 보낸다.
그래서 점점 과감하게 맘대로 자르고, 자르는 실력도 늘어 이제는 분기에 한번 정도 미용실을 간다.
어제,
"바가지 머리해 주세요."
"바가지 머리.......요?"
싫다는 뜻이다.
"네, 꼭 해주세요."
"그럼.........., 펌기가 없어서 앞머리가 뜨고, 뒷머리가...."
싫다는 뜻이다.
잘하고 다녀볼 거라며 웃음으로 강요했다.
바가지 머리를 자르면서, 여전히 백수냐고 물었고, 여전히 백수라고 했고
뭐하고 지내냐고 물었고, 요즘은 책도 읽고, 붓글씨도 좀 쓰고, 빵도 굽기 시작했다고... 그 시간이 평화롭고 좋다고 했다.
부럽다며,
원장님도 붓글씨 쓰는 거 좋아한다며,
군복무할 때 행정실 서기가 그렇게 부러웠다고, 그 보직을 받으려면 .......... 군대이야기도 한참했고,
건축공무원인 형이 늘 할일없이 나른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 방역지원으로 가끔 나간다고,
공무원 밥값하는 거 보게 되었다고 웃고,
이렇게 코로나 환자가 많은데, 아직 본인 미용실에는 한번도 해당사항이 없는 것도 신기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끊어졌던 붓글씨이야기를 붓에 관한 이야기로 좀 더 하고,
각자가 설날에 무엇을 했는지도 공유하고.
그러다가 문득 "우리 진짜 오래됐죠?" 하고 물었더니,
아마 본인에게 가장 오래되고 규칙적으로 오는 손님이라고 했다.
아주 천천히, 마치 펌을 하는 것처럼 중간에 머리를 감고,
또 커트를 하고 아주 오래도록 바가지머리 커트를 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며, 2022년 첫 커트를 하고 나오는데 눈이 아주 조금 내렸다.
그런데, 지금 후회중이다.
바가지 머리, 얼굴은 원래 말할것도 없고, 피부라도 받쳐줘야 바가지머리가 되는건데, 펌이라도 하던가.
앞으로는 말리면 고집피우지 않겠다고 오늘 세번쯤 결심했다.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필(細筆) 두 자루를 샀다 (0) | 2022.02.09 |
---|---|
largo, 고맙습니다 (0) | 2022.02.06 |
한가한가? 바쁜가? (0) | 2022.02.04 |
[일기] 나비를 꿈꾸는 것은 (0) | 2021.11.30 |
[일기] 백수의 하루 (0) | 2021.11.1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