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달리 가방을 두 개 들고 출근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손이,
누군가의 엉덩이에 스치기도 하고,
누군가의 등을 스치기도 하고,
그 때마다 앗! 싶다.
나는 가방을 하나씩 어깨에 맨 다음 손을 겨느랑이에 말아넣고 팔짱을 꼈다.
편하고 익숙했다. 그랬다.
나는 늘 팔짱을 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은 가방을 두 개 드는 바람에 오토메틱이 작동하지 않은 건가 보다.
그래서 앗! 하는 순간이 온 거였다.
팔짱를 끼고 주변을 보니,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스마트폰을 그리도 보는 이유는,
어쩌면, 스마트폰을 가슴 정도에 놓고, 보지 않으면,
그 손들은 어떻게 할거야, 라는 거지.
스마트폰 중독자가 아니라 어쩌면 앗!의 순간을 맞지 않으려는 자구책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눈길을 줘도, 앗!
누군가에게 의도치않게 손이 스쳐도, 앗!
난 팔짱을 끼고,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웹툰을 하고,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지하철의 속도를 즐기며, 하루를 계획하고 싶지만,
앗!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게임을 하고, 웹툰을 보고, 결연한 폼으로 팔짱을 끼고,
그런다.
9호선에서는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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