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콩에 하얀 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들 눈에도 보이는지 모르겠다.
<잠시 딴소리>
블로그에 글을 안 쓴지 반년이 훌쩍 지나 이걸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내게는 이상하고도 굉장한 일이다.
블로그 개설이래 이렇게 오래도록 비운 일이 없다.
그 사이에 각종 sns와 유튜브, 그렇더라도 다시 가보기로 한다.
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콩나물을 생각했다.
몇 년째 방치된 콩이 있었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몸에 좋다는 콩이라서,
쉽게 상하지도 않아서,
모양도 처음이나 지금이나 똑같아서,
계속 못 본척하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혹시나 콩나물이 될까 하는 생각에
콩 한 줌을 구멍이 뚫린 그릇에다 담아
싱크대에 올려놓고 볼때마다 물을 줬다.
과연,
지금까지의 핵심은 물을 띄엄띄엄주면 콩은 아마 상했을 것 같다.
물을 자주 주면 콩이 상할 틈이 없는 듯 했다.
아직 콩나물이 된 것은 아니지만, 싹이 나서 깜짝 놀랐으니
호들갑을 떨어본다.
방치하지 않으면,
물을 자주 주면,
상할 틈을 안 주면,
뭐가 되어도 된다.
콩이 아니라 싹이 난 콩이 되기도 한다.
회사를 작년 10월말일로 그만두고,
실패한 라오스 여행을 다녀오고,
실업급여가 거의 끝나간다.
오랜 시간이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삶의 주인이 바뀔 뻔도 했다.
아주 아주 오래전
20년전쯤에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아무 생각없이 자판에 손을 올려놓고, 그저 손이 가는대로 두드리고 나서
내가 주절거려 둔 글을 읽고는
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를 알아챘다.
지금 나는 다시 궁금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
아무 생각없이 자판 위에 손을 올려두기로 한다.
콩은 이제 콩이 아니라 싹이 난 콩이 되었다.
운이 좋으면, 콩나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
나도....,
그렇게 되길 바란다.
흉터
최승호
개에 물린 이빨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흉터 속에는
아직도 으르릉거리는 개가 있고
왕 같은 아버지의 얼굴이 있다
스스로 아물릴 수밖에 없는 상처들,
가시덤불의 길을
피에 젖어 절뚝이며 걸어온
곰 같은 역사도 그렇지만
저마다 끙끙대며 아물릴 수밖에 없는
상처들이 검은 흉터가 된다.
여린 나무들
스쳐간 도끼 자국은
나무가 자라 푸르름을 완성하는 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공포를 깨끗이 잊은 것 같으면서,
꿈속에 목 졸리는 어머니들,
꿈속에 목 졸리는 어린 아이들,
그들에겐 속 깊은 흉터가 있다.
짓눌리는 밤과 버둥거려야 하는 대낮의
이중의 악몽이 있다.
.
.
.
뭐든, 지워지지 않는다.
콩이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 - 페르 라 쉐즈 묘지(Cimetière du Père Lachaise) (0) | 2020.09.21 |
---|---|
[자발적 노동]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좋다 (0) | 2020.07.05 |
[9호선 에세이] 팔짱 (0) | 2019.07.01 |
[9호선 에세이] 뮤즈 (0) | 2019.06.27 |
상향적 고통을 향한 노동열차 탑승 (ft.이케아 FRAKTA) (0) | 2019.03.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