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이 맘때,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을 갔었다.
미술관을 들어갈 때 도로 곁 인도에서 한 커플의 연인들이 포옹을 한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
프라도미술관을 돌고 나올 때까지 그들은 그 모양 그대로 여전히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마 두 시간. 그들의 포옹은 길었고 캐리어 하나가 그 옆에 있었다.
...
다른 날보다 5분 늦게 집을 나왔다.
어디에 간 건지, 스카프를 찾을 수 없었다. 혹시 겨울옷, 봄옷을 정리하다 들어간 건지, 토요일에 썼으니 그럴 리가 없다.
토요일의 기억이 없었다면, 포기를 하고 시간에 맞춰 출근을 했을텐데, 토요일의 기억때문에 자꾸 찾았고, 결국 찾았다.
토요일에 입었던 자켓 위에 걸쳐있었다. 함께 벗은 모양이다.
스카프를 찾느라 늘 타던 전철을 놓치고,
늘 사던 아메리카노를 사지 못하고,
일단 출근을 했다.
가방을 놓고,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커피를 사러 다시 나왔다.
한전에서 전선공사를 하는지, 좁은 길이 꽉 막혔다.
3분 전에도 같은 상황이었을텐데 낯설게 본다.
전선 공사 중인 인부들은 조장인 듯 보이는 남자가 주는 불가리스를 아이쿠, 하며 반갑게 받는다.
조장은 한 봉지 가득한 불가리스를 막힌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눈다.
엉킨 차들과 불가리스를 들고 있는 남자과 인부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콤포즈 커피숍으로 간다.
저 멀리서 이미 지각인 디자인팀 부장이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이미 지각인 자의 여유로운 걸음과 커피를 사러 다시 나온 나의 걸음이 거의 비슷하다 생각하는 사이 거리가 점점 좁아진다.
여느 때라면 아무 생각없이 손을 흔들며 아침 인사를 했겠지.
우리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그 부장도 여느 때처럼 인사할 요량인지 이어폰을 빼면서 내게 웃어 보인다.
한 발 두 발 다가서는데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안고 싶다.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으리라 생각했을 그 부장은 하이파이브라도 하려는 듯 두 손바닥을 펴 높이 든다.
나는 부장의 작고 통통한 손을 순식간에 겨드랑이쯤에 내려놓고 목을 감아 앉았다.
나보다 좀 작은 그 부장의 머리가 내 가슴에 닿도록 안고는,
"그냥 안아보고 싶어서."
"고마워요."
내가 안고 싶어서 안았는데,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주고 받은 말이 맞지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스치듯 짧은 포옹을 하고 부장은 회사로, 나는 콘포즈 커피숍으로 가던 길을 갔다.
주말 내내 몸과 마음에 미세한 전기가 통하는 듯 낮은 진동이 끊이지 않아 성가셨고 피로했다.
드라마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뭘하면 좀 덜 느껴지기는 했지만,
잠시만이라도 가만히 있으면 온 몸에 느껴지는 진동.
전기 흐르는 바닥에 흘려놓은 물처럼 규칙적으로 튀어올랐었다.
포옹을 사전에서 찾으면, 남을 아량으로 품어준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인데, 나는 두 팔을 벌려 강제로 누군가의 포옹을 받아낸 것이다.
누군가의 아량이 필요했던 나는 적극적으로 아량을 구한 것이다.
포옹 후 그 진동이 가라앉은 듯 했다.
그러길 잘 했다.
-잠시 딴 소리-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전에 다니는 회사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상사가 계셨고,
(대표는 아니다. 상사와 대표는 너무 다른다. 같은 피고용인이면서 상사인)
나는 때때로 그 분의 방으로 가, '한 번만 안아주세요.' 그랬었다.
처음에는 그 분도, 그걸 본 다른 동료들도 4차원이라며 이상하다 했으나, 나는 가끔 그런 포옹이 필요했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포옹을 하고 나면, 가슴에서 충천이 되는 것을 느낀다. (몇 년전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온 것 같다)
그럼, 수분 팩을 한 뒤의 피부처럼 마음이 가지런해졌다.
그 느낌이 좋아서 일주일이면 한 두번은 그런 포옹을 했지만,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그런 응을 받아줄 사람도 없고,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끔 힘없어 하는 동료가 있다면 안아주었을 뿐이었다.
지금 동료인 부장도, 전 동료인 상사도 모두 여자이다.
이런 언급이 필요하다 느껴지는 이상한 세상이다.
-잠시 딴 소리 끝-
디자인 부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
'만약, 당신과 그 시간에 교차되지 않았다면,
오늘 내내 몸과 마음에 흐르는 진동을 진정시키지 못해,
전기 흐르는 바닥에 흘려놓은 물처럼 튀다튀다 어디론가 흘렀을지도 몰라.'
라는 엉뚱한 말은 삼키고,그냥 '고맙다'고만 하겠다.
어쩌면 그의 오랜 포옹도 그랬던 걸까?
프라도미술관 앞의 연인들처럼 키스는 없었지만, 지루할 정도로 길었던 포옹은
그의 몸과 마음에도 성가신 진동이 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포옹의 사소한 방식
권현형
이윽고 뜨거움이 재가 될 때까지
그들 머리 위 자귀나무는 바람이 불지 않는
저녁의 골목을 흔들 것이다.
골목 주택가의 닫힌 철문 앞에서
닫힌 시간 안에서 남자와 여자가 껴안고 서 있다
사이를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동의 석고상처럼 보이지만
여자의 등 뒤에 두르고 있는 관계의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물려 있다 연인과 무관하게
철학자처럼 건달처럼 사색하며 거닐며 타오르며
그가 포옹에 몰입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사랑은 정신노동이다 뇌관이 터질 지경으로 달리는
팽창하는 여자의 등이, 척추의 비탈이 보인다
매끈한 생머리의 가닥을 묶은 노랑 고무줄 때문인지
여자는 자신을 던져 사랑하는 듯 하다
남자의 분열된 손가락을 담배를 볼 수 없는
그녀의 뒷모습은 몰입으로 작은 깃털 같다 육중한 슬픔같다
가령 사랑을 나눌 때 티브이를 켜 놓은 적이 있다면
껌을 씹은 적이 있다면, 당신 사랑의 패는 경멸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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