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라.
넘어지면 안된다.
비가 많이 온다잖아."
엄마는 비가 와 더 바쁜 아침 출근길에 말했다.
알았어, 하고 핸펀을 주머니에 넣었다.
비가 오면, 미끄러지지.
나는 비가 오지 않아도 잘 넘어지지.
다리도 부러지고, 발가락도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걸 아는 엄마는 빗물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넘어지지 말라고 한거다.
나는 미끄러져서도 안되고, 넘어져서도 안된다.
다치면 더 안된다. 고 생각했다.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한택수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삶도 죽음도, 포옹마저도.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쏟아지는 폭우와 어둠.
나는 삶을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삶을
단 한 번인 나의 삶을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쏟아지는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어제 점심시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테이블을 비우고 나가다 식당 문 앞에서 망연하게 폭우를 본다.
우산을 들었으나 폭우 속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젖지 않는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폭우에 무사한 것은 불가능하다.
테이블을 비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떼를 이루고 식당 문 앞을 막았다.
밥을 먹던 나는 사람들이 문을 막아 폭우의 소리만 들릴 뿐 쏟아지는 비는 볼 수 없었다.
폭우가 내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폭우처럼 오는 이도 막을 수는 없다.
고스란히 젖는 수 밖에.
비 그치고, 해가 난 뒤에야 폭우처럼 다가온 이를 거울보듯 보겠지.
이미 그에게 고스란히 젖은 뒤
세수한 듯 말간 얼굴이 될 것인지.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될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그 때는 알 수 있겠지.
초여름 폭우처럼 온 그가 곁에 있는 동안 그걸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에
한 줄의 시를 띄우지 못하는 사람은
애인이 없는 사람이란다
함박눈 내리는 밤에 혼자 앉아 있으면서도
꼭 닫힌 창문으로 눈이 가지지 않는 사람은
사랑의 멋을 모르는 가엾은 사람이란다.
엄마 말 잘 듣는 딸이라면 비에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가엾은 사람이 되더라도 폭우 속을 걷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무늬 원피스 (0) | 2018.07.20 |
---|---|
On the road-말 (0) | 2018.07.19 |
포옹 (0) | 2018.05.14 |
세상 믿지 못할 것이 내 마음 (0) | 2018.04.26 |
오는 이가 그립다 (0) | 2018.04.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