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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아버지訃告] 길의 끝에 관한 질문

by 발비(發飛) 2017. 11. 30.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공식적인 최종 목적지는 산티아고 데 콤보스텔라이다. 

그곳에서 하루를 더 걸으면, 길의 끝이라고 하는 피스테라(Fisterra)가 나온다. 


나는 3년 전 묵시아를 거쳐 피스테라로 갔었다. 


-잠시 딴 이야기- 


영화 <더 웨이>의 마지막 장면이 피스테라인 줄 알고, 그 장면을 상상하며, 찾아간 곳이었다. 

함께 걷던 미국 아저씨 조가 묵시아의 사진을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묵시아가 <더 웨이>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곳이었다. 

묵시아가 거기인 줄 모르고 전날 다른 곳만 다니다가 피스테라로 온 것인데 말이다. 


어쨌든 

가슴을 치며 약 올라하는  내가 조는 너무 재미있다고 하고, 



0.00km. 

길의 끝. 

피스테라(Fisterra).


나는 큰 바다가 있어, 길의 끝이 바다와 이어진 것이 보이고, 

그래서

막막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곳이 길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피스테라 0.0km에 도착한 날은 오락가락하는 비와 안개와 바람 때문에

<더 웨이>의 그들처럼 

그곳이 길의 끝인 것을 알고, 그 감상으로 세레모니를 할 새가 없었다. 


저 표지석이 겨우일 뿐, 

길의 끝에 서기 위해 걸었던 한 달이 넘는 시간조차도 의식되지 않았다. 

나의 길고 험한 걸음들은 없었던 일처럼 말이다. 

그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은 사방과 빗방울 섞인 바람과 추위만 있었다. 

길의 끝에서 그것들을 견디는 일이 전부였다.  


길의 끝에 서있던 나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길의 시작에서도, 길을 걷던 중에서 무엇인가를 견디었던 것처럼 똑같이 견디고 있었던 것이라고.

길의 시작부터 끝을 걷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똑같이 무엇인가를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3년이 지난 오늘에사 생각한다.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버티고 견디었을 것이다. 

80년이 넘는 그 긴 삶은 생각도 못하고 숨이 넘어가는 한 순간만 있었을 것이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하나 더 달아 달라는 손짓을 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버지는 이 고통 속에서 더 살고 싶으신가보다 생각했다. 

긴 삶을 의식도 못한 채 한 숨을 견디고 계셨을 아버지에게 가혹하던 나의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가혹했다. 


죽음이 늘 곁에 있었던, 언제든 한 호흡만 쉬면, 이 곳이 아닌 저 곳이 되는 순간에 대해 생각지 않았다. 

어깨 위에 있는 죽음의 문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어느 쪽 어깨 위에 활짝 열린 채 놓여있는 죽음의 문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어느 순간 죽음의 문이 얹혀진 어깨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한 숨을 쉬면..., 

아버지는 어느 순간 죽음의 문이 얹혀진 어깨 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지막 숨을 쉬었다.


선택이셨을까? 


늘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한테 묻고 싶다. 

그 때, 무슨 마음이었어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아버지는 마지막 의식에서 우리에게 했던 사랑한다는 말, 눈빛, 그것이 그때 아버지의 생각에는 그것 뿐이었는지, 

다른 것은 없었는지, 

말이 안되게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보름 만에 이 질문이 하고 싶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하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어떤 질문에도 선생님 답게 성실하게 대답해 주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보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가 보고 싶다.


물어볼 사람이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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