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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아버지訃告] 스마트폰, 컴퓨터

by 발비(發飛) 2017. 11. 28.

아버지에게서 한글을 처음 배우고, 엑셀도 배웠다. 

학교 선생님이시던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얼리 어댑터'이다. 

티비를 어느 집보다 먼저 사서, 밤이면 동네사람들이 티비를 보러왔고,

전기밥솥이 처음 나왔을 때, 대구까지 가서 전기밥솥을 사오셔서 엄마의 탄내나는 밥을 더는 안 먹을 수 있었고, 

세탁기를 누구보다도 먼저 샀고, 

어릴 때는 대부분의 기계가 가전제품이라, 잘 사는 편은 아니었지만 마치 잘 사는 집처럼 온갖 전기제품들이 집에 있었다. 

신기한 다리미, 카메라 등 아버지의 수집에 가까운 전기제품들 때문에 엄마는 늘 불만이었다.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어느 선생님보다 미리 사서 익혀, 교감이셨을 때 직원 교사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셨다. 

그즈음 나도 배웠다. 

그리고 쭉 그랬다. 

스마트폰의 신기종이 나올 때마다 늘 엄마와 실랑이를 하면 결국 사고야 마셨다. 나는 부러웠다. 

그리고 잘 쓰셨다. 잘 쓰시는 것 같았다. 장난감처럼.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2주전, 병원에 막 입원을 하셨을 때

내가 병실에 막 도착하자 말자 아버지는 아주 민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미셨다. 


" 이거 좀 어떻게 해 줘. 갑자기 다 없어졌어."


아버지는 내가 안동을 갈 때마다 호시탐탐 내 시간을 노려 스마트폰을 열어 이건 어떻게 된거냐. 이런 앱도 깔고 싶다며 늘 요구가 많았다. 

귀찮은 마음이 너무 커서, 이게 왜 필요하냐며, 이런 거 하면 위험하다고, 회원가입하지 말라고 잔소리로 끝냈다. 

몇 번이 반복되자 아버지는 더 이상 내게 핸드폰을 꺼내지 않으셨다. 



나는 핸드폰을 열어보고 놀랐다. 


엉망이었다. 

카메라앱이 서너개 깔려있고, 연락처도 서너개, 창마다 엉망진창이었다. 

전화번호도 모두 날아가서 연락처가 '0'이었다.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 저는 스마트폰이 너무 어려워서 회사를 그만두면 엄마처럼 폴더폰을 살거에요. 아버지도 퇴원하시면 폴더폰으로 바꿔요. 

이건 쓸데없이 너무 위험해."


아버지는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이셨다. 얼리어댑터가 퇴보를 선택하신거다. 

엄마의 전화번호수첩을 꺼내, 

이 분은 넣어요? 이 분은요? 하면서 아버지의 오랜 사람들을 넣고 빼고, 정리하셨다. 

아버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때로는 웃고, 생각에 잠기고, 속상해했다. 

30명 남짓 연락처를 저장했다. 

나는 아버지가 퇴원하시면, 움직이지도 저장도 되지 않은 까마득한 뇌 속을 부유하지 않도록 꼭 폴더폰으로 바꿔드려야지 했다.


아버지가 쓰시던 컴퓨터를 서울로 가지고 왔다. 

언제나 최신형을 좋아하셨기에, 아버지는 모니터와 본체 일체형을 가지고 계셨는데 늘 부러웠다. 


아버지는 뇌경색으로 10년 전 쓰러지시고, 뇌의 3/2가 죽어버려, 컴퓨터 전원을 앞에 두고도 이걸 어떻게 켜는거냐고 하셨더랬다. 

결국 전원을 켜서 한글을 열어서 본인의 혈압을 기록할 수 있는 표를 만들고 그 표에 혈압을 기록하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하셨다. 

우리는 모두 포기할 줄 모르는 아버지의 끈기에 항복했다. 


아버지는 몸이 불편하셔서 거의 집에 계시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거나 위로 운동을 하셨다. 

길고도 엄청난 싸움 끝에 인터넷 뱅킹과 쇼핑만은 안된다는 것으로 금을 긋고 늘 그 앞에 계셨다. 


집에 와서 아버지의 컴퓨터에 부팅을 하고, 열어보았다. 

아버지의 기록을 따로 저장하려고 이 곳 저 곳을 살핀다. 

사진은 달랑 두 장, 그것도 어쩌다 찍힌 사진.

분명 지난 여름만 해도 안 그랬었는데, 그 사이 아버지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소멸(소멸이 맞다)되고 있었던 거다. 

뇌부터.


아마 그 때부터인가보다.

전화를 할  때마다, 나는 니가 좋다. 나는 니가 참 좋다. 하셨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해도, 좋으니까 그랬다. 


아버지의 컴퓨터를 초기화시켰다. 

부팅 때마다 뜨던 아버지의 얼굴이 뜨지 않는다. 


서서히 하얘지셨을 아버지의 뇌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의식을 잃기 전, 내가 서울로 가야 할  때마다 아버지는 뽀뽀를 하자고 했다. 

볼에 해 드리니까. 온 힘을 다해 입술을 내밀었다. 

한 번에 다섯 번 열 번을 했다. 이상했다. 아버지는 왜 나와 뽀뽀를..

산소마스크를 끼시게 되었을 때도, 내가 서울을 가야 한다면 산소마스크 안에서 입술을 내미셨다. 

산소마스크 플라스틱을 사이에 두고 열번 스무번 뽀뽀를 했다. 

그렇게 하고는 온 힘으로 두 팔을 들어 내 볼을 쓰다듬고 하트를 그려주셨다. 

고맙다고도 했다. 



아버지의 뇌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그 뇌는 어디까지 생각을 하고, 알고, 넓고 좋은 길이 보인다는 저 너머로 가겠다고 하시고 가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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