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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정호승] 갈대

by 발비(發飛) 2016. 12. 21.

갈대


정호승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은 강변에 사는 것은

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는 것을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것이었나니


내가 아직도 바람이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이 햇살에 빛나기 때문이다. 



시는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시들이 흩어져있고, 그 많은 시들 중에 어떤 시를 발견한 것, 나는 나의 능력으로 목마를 때 귀신같이 물을 찾아마시는 본능처럼 그렇게 내가 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마음에 와 닿는 시라면 경이로운 일이 되었다. 


오늘 아침은 내년 사업계획을 정비하기 위해, 사업정비를 위해 챙겨야 할 요소들이 무엇이 있나 여러 자료들을 검색했다. 

어느 스타트업 전문 강사의 블로그,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현란한 전문용어들을 구사하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 낯선 단어들 아래 놓인 한 편의 시. 

나는 이 시를 보면서 시는 발견하는 것, 혹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종에 의해 시가 내게 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며칠 전 한 평론가와 메신저로 오간 대화.


"시는 단순한 반복이며, 

그 기대심리의 충족이며

반복 속의 변이이며 

그 쾌감의 충족이다."


->


"삶은 단순한 반복이며, 

그 기대심리의 충족이며

반복 속의 변이이며 

그 쾌감의 충족이다. 

시를 삶과 바꾸어도 되는데요?"


->


"ㅋㅋ 시는 구속이 있어야 탄성이 생겨요."


->


"삶은 구속이 있어야 탄성이 생겨요. 진짜 시를 삶과 바꾸어도 되네요?"


->


";;;;;;;"


시는 어쩌면 삶과 같은 것일지 모른다. 삶이 이해할 수 없다면 시를 이해해 보는 것도 방법이겠구나 생각했다. 

그 평론가는 나의 이런 반응에 어느 정도 황당해 했지만, 진심으로 그 생각에 한동안 시와 삶에 대해 뿌옇게 멍한 생각을 이어갔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어느 비즈니스 블로그에서 만난 정호승시인의 [갈대]를 읽으며 같은 생각을 한다. 

삶을 이해할 수 없다면, 시를 이해하는 것 또한 방법이겠다. 


내가 아직도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내 발밑에 물결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는 이유는 희망때문이 아니라 나의 실패들이 포기를 모르고 꿈틀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도 아무도 살지 않은 강변에 사는 것은

실패도 인생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실패하였으므로, 내 옆에 앉아있었던 누군가의 자리는 지금 비어있다. 빈자리들은 내가 보낸 시간이고, 살았던 의미이고, 그들의 존재를 기록하는 유일한 것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이긴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는 것을


강한 사람이 되기 싫었는데, 강한사람이라는 말을 간혹 듣고, 강하다는 생각이 들고, 믿고, 이긴 것이 아니라 이곳에 있음이 섬뜩할 만큼 강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 점차 늘어난다. 그 순간은 더럽게 느껴질만큼 살아남고 싶다는 욕망이, 혹은 살아 남고자 본능적으로 떠드는 나를 볼 때다. 


죽은 새들의 정다운 울음소리를 들으며

온종일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내가 과거의 그곳에 있지 않고, 현재 여기에 있는 것은 과거의 시간과 함께 했던 그들과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가 실패한 시간과 실패한 사람들은 서로를 몰랐으나, 지난 밤의 긴 불면의 시간동안 그들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내 머릿속에서 떠들어댔다. 그들의 수다들로 나는 더욱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나의 삶이 진정 괴로운 것은

분노를 삭일 수 없다는 것이었나니


아비규환, 내가 보낸 시간과 사람들 중에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를 잡고 있다. 실패한 시간과 사람들에 대한 억울함이 줄을 짓는다. 그들의 시간과 그들의 '그들'이었을 '나'는 태어날 때의 나로 온전하다. 그들의 '나'는 털끝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억울하다고 팔짝팔짝 뛰고 있다. 내가 뛰어대는 분노로 '죽은 새들이 가라앉은 강물'은 언제나 물결친다. 


내가 아직도 바람이 부는 강변에 사는 것은

죽은 새들이 날아간 하늘이 햇살에 빛나기 때문이다. 


햇살....이라...,


지난 밤의 불면에서 무엇을 했건, 어떤 소리를 들었건, 

이른 아침 베이지색 목도리를 칭칭 두르고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지하철을 타고, 

편의점 커피 한 잔을 사고, 

커피 쿠폰을 모아 사은품으로 받은 재생지 다이어리를 운좋게 받아들고 출근을 했다. 


어제 팀원이 전달해준 2016년 매출현황이 담긴 엑셀 파일을 뚫어지게 보며, 

별로다. 좋지 않군, 2017년은...,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하다가 

나는 지난 밤에 만났던 죽은 새들의 재잘거림을 어느 새 모두 잊어버렸다. 

오늘밤 다시 내가 바람부는 강변에 홀로 서서 죽은 새들의 재잘거림을 듣는다 하더라도 

지금 나는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는 시간과 사람들 사이에 있다. 


나는 우연히 만난, 아니 내게 찾아온 '갈대'라는 시는 이렇게 말해주고 자리를 뜬다. 

다시 옆 자리 하나가 비었다. 


삶은 '실패의 단순한 반복'이며, '이번에는' 이라는 '근거없는 기대심리'는 다시 나를 움직이게 하고, 똑같은 내가, 똑같은 움직임으로  달팽이의 걸음만큼 조금씩 나아가고, 그 조금 곁에 보이는 조금 다른 풍경이 주는 쾌감으로 한 두시간을 달리 살아간다.


"시는 단순한 반복이며, 그 기대심리의 충족이며, 반복 속의 변이이며, 그 쾌감의 충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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