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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지진

by 발비(發飛) 2016. 9. 12.

야근중이다. 


휘청, 흔들렸다. 

다리를 꼬고 앉아 일을 하다가 다리가 풀어졌다. 

의자가 꿀렁거렸다. 


나는 내 몸이 흔들리는 줄 알고, 수전증에 이어 몸도 흔들리나... 하는데 

책상 앞 모니터가 흔들리고, 책꽂이에 꽂아둔 종이들이 흔들리고, 

전등이 흔들렸다. 순간 귀신이 왔나 했다. 


아랫층에서 야근하는 동료에게 내려가지도 못하고 전화를 하니, 흔들린단다. 


지진인가보다 하고 포털을 열어보니, 지진소식은 없다. 

그러다 핸펀으로 야근때마다 듣는 JTBC뉴스에 속보로 뜬다. 지진이란다. 


지진이구나, 이런 것이 지진이구나.


생각해보면 작은 흔들림인데도 그 섬뜩함이 장난이 아니다. 

앵커는 울산 시청자랑 전화인터뷰 중이고, 나는 뉴스를 들으면 다시 일을 시작했다. 

울산 시청자가 소리를 지르며 흔들린단다. 그순간 나도 흔들렸다. 좀 전 보다 더 크게 흔들렸다. 

꽤 오랫동안 흔들렸다. 


두려움. 두려움을 느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마치 내일 지구가 종말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다 하면서 

오늘 자료를 만들어서 번역을 시켜야 추석 연휴 전에 보낼 수 있다. 


지난 출장길에 에어차이나를 탔을 때 비행기가 무지하게 흔들렸었다. 

마치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가 나무에 충돌하듯 강한 기류에 부딪혔다.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쭉 나왔고, 놀란 마음에 계속 딸꾹질을 하고, 내려서도 한동안 심장이 뻑뻑했다. 

옆에 탄 대표님이 나때문에 제대로 무서워하지도 못했단다. 

내가 너무 놀란 탓인지 그 다음부터는 출장길에 대한항공만 끊어주셨다. 


나는 내가 겁이 없는 줄 아는데, 

나는 두려움이 없는 줄 알았는데, 

결국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최근 몇 번이나 섬뜩한 두려움을 느꼈다. 

요즘은 새삼 잘 놀래고 잘 무서운 내가 낯설고 이상하다. 


그러나 저러나 

안나푸로나 빙하의 추위가 달랐듯, 지진의 흔들림은 차원이 달랐다. 

(안나푸로나 빙하의 추위에 얼고 난 뒤, 나는 추위를 만날 때마다 내 몸에 박힌 빙하의 추위를 함께 느껴 견디지 못한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게 된 건 그때부터였다)

분명 거대한 것이 뿜어내는 힘은 차원이 다른 무게가 있다. 

뼈 속으로 스며, 깊이 박혀버린 빙하의 추위가 그러하듯 오늘 저 땅 속 깊은 불길에서 솟아오른 묵직한 흔들림 또한 오랫동안 내 몸이 기억할 듯 하다.

나는 아마 흔들릴 때마다 오늘의 묵직함으로 흔들릴 것 같다. 


이 묵직함이라면, 원전이 걱정이다. 흔들림이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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