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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2

by 발비(發飛) 2016. 1. 15.

김정운의 신간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겨우 앞부분을 읽다가 나는 어떤 주제에 관해 격하게, 그리고 일관성 있게 공감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수십개 수백개의 자아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끔 친구들에게나 술자리에서나 마음이 풀어질 즈음이면 나도 모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앞뒤가 안 맞아. 근데 어떻게 앞뒤가 안 맞는데.'


그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변명 같이 느껴졌었다. 

그래서 한동안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로 카톡 프로필을 적어두기고 했다. 


"내 안의 모든 것은 항상 다른 무엇이 되려 한다"


하나의 나를 이해하고 나면, 또 다른 내가 등장해서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한 '내'가 또 흔들린다. 

모두 흔들린다. 

그래서 나 자신을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냥 내 안의 여러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수십 수백개의 자아에 관한 그의 말들을 가끔 곱씹으며, 그 순간을 산다.  


어제부터 조금씩 읽기 시작한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마치 구슬이 꿰어지듯 하나로 꿰어지는 내 취향,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쭈르륵 꿰어졌다. 

요즈음의 김정운 작가처럼, 나도 일관성 있게 앞뒤가 맞는 듯 했다. 


화장대 앞의 여자는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서정주 시안이 노래한 "거울 앞에서 선 내 누님"처럼 여자의 '맥락적 사고'는 시간이 흐를 수록 확장된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건강하고 현명하며 지혜롭다. 화장을 지우며 자신의 다양한 역할을 성찰할  수 있는 무대 뒤의 화장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자아;를 무대 위의 연기자에 비유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일관되고 통일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상호작용 의례에 관한 미시적 연구를 통해 고프먼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인간에게는 '여러 자아'가 제작기 다르게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잇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된다. 무대 위가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는 삶이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 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part 1




나는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 중 


나는 내 안에서 여러 개성을 창조해냈다. 나는 계속해서 다양한 개성들을 창조하고 있다. 내가 꿈을 꿀 때마다 모든 꿈이 하나하나 육신을 입고 서로 다른 사람으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꿈들은 나를 대신하여 계속해서 꿈을 꾼다. [페소아와 페소아들]


나를 찾은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_텍스트243 [불안의 책]


우리들 각자는 한 명 이상이고 여러 명이며 수많은 자아다. 그러므로 주위 환경을 무시하는 자아는 그 환경 때문에 즐거워하거나 고통받는 자아와 같은 자아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라는 거대한 영토 안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수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_텍스트396 [불안의 책]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도라 마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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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고보니, 어찌나 안심이 되는지.

얼마 전 누군가에게 "포장된 이야기로 사는 인간'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비난이었는데, 나는 그가 왜 그 말을 하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자아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독립된 객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할 때 이루어지는 관계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예술은 인간의 여러 자아에 대한 고민이고, 고찰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온전히 홀로 독방에 있을 때의 자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 지워질 때의 자아. 

둘 중 어느 하나가 자아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에 따라 나의 자아는 달라진다. 

나의 자아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또 다른 자아를 생산할 수 밖에 없다. 

만약 하나의 자아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타인과 환경에 대해서 고려하지 않은 사람은 아닐까 하고 역공격을 하고 싶은 생각마저도 든다. 


피카소가 그린 도라 마르는 눈도, 입도 코도 손도 마음도 모두 각각의 자아를 가지고 독립적인 소리를 내고 있다. 

그 다양한 것들이 한 몸에 합체되어 어느 정도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몸은 수십 수백개의 자아를 담는 그릇이다. 그 어울림을 성격이라고 하고, 취향이라고 하고, 품위라고 하고...


거울을 오랫동안 봐야 겠다. 

저녁에는 오늘 무대 위에 올려진 나의 모습을 복기하고, 

아침에는 새로운 무대 위에 올라가느라 발발 떨고, 두근거릴 새로운 나를 토닥여주며, 

매일 그런 거 아니었냐며, 일상으로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라고 위로해주고,

릴렉스! 


또 나를 흔들어줄 공감 글귀가 나왔으면 좋겠다. 겨우 앞부분을 읽었다. 

책을 읽고, 줄줄 꿰어진 것이 오랜만이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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