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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고영] 달걀

by 발비(發飛) 2015. 3. 17.

달걀

 

고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房門을 연다고 다 訪問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다음 토요일에 떠나기로 했다.

주문한 시집이 내일 오면, 나는 배낭 앞 쪽에 넣고 다시 떠날 것이다.

 

이 여행은 [더 웨이]라는 영화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더 웨이]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조난 당한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생장에 간 아버지가 아들의 배낭을 메고 그 길을 걷는 일종의 로드 무비이다.

 

얼마 전 터키를 여행하던 중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었는데,

문득 앞 줄에 쭉 앉아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들을 보는데 문득 [더 웨이]가 생각났다.

그 길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눈빛이, 눈길이... 모두를 거부하고 뭔가에 화가 났던 아버지는...

나는 그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산티아고로 가기 위해 파리행 비행기를 예매하고, 산티아고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배낭을 쌌다.

책은 스페인, 포루트칼 가이북과 산티아고 가이북, 두 권만 챙겼다.

살아돌아오기 위해 챙겨야 하지만, 이 두권은 내가 챙긴 옷보다 더 무거웠다. 

그러다 이 시집의 미리보기를 보았다. 

'달걀'은 이 시집의 첫 번째 시인데, 이 시를 읽었을 때 두 팔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미리보기를 통해 볼 수 있었던 시 [태양의 방식] 또한 그랬다.... 시인의 언어는 응축이며, 핵이다.

내가 잊었던 단어의 무게, 문장의 무게.

그 묵직함이 내 몸으로 들어와 부유하던 몸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길을 걷는 동안, 피레네를 넘고, 어느 이름 모를 성당의 광장에 앉아 노란 시집을 펼쳐 읽어볼 것이다.

시의 무게가 나의 무게가 되기를 기도하면 말이다.

다행이다. 떠나기 전에 이 시집을 만나게 되어서 말이다.

 

 

표정이 없는 얼굴은 닫혀있는 문보다 견고하다.

문을 여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서둘러 닫혀버린 문밖에서, 도로 벽이 되어버린 문밖에서, 너무 늦게 나는 알았다.

 

-같은 시집 '서둘러 문을 닫는 사람은 문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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