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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경복궁 옆 적선시장

by 발비(發飛) 2014. 4. 3.

 

 

경복궁역 2번출구에서 나오자 보이는 파리바케트 골목,

들어서자 이런 세상이 하고, 무장해제되었다.

난 아마 여기서 무얼 먹어도 무얼 해도 모두 좋다고 했을 것이다.

이미 눈에 보이는 그곳 비주얼에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익숙함과 낯설음, 공존할 수 없는 단어의 의미가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내 기억 속에 켜켜이 쌓여 가장 바닥에 깔려 고요했던 풍경이 시간을 뚫고 현재에서 만난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간판으로 건 맥주집에서 본 길이다.

맥주를 마시는 동안 내내 바라본 오래된 철물점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담배를 피웠다. 한 대의 담배를 다 피우면 어디론가 가고,

다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풍경 앞에서 담배 한 대의 시간만큼 그곳에 있었다.

남남, 남녀, 남.... 저 철물점배경은 누구와도 잘 어울렸다. 홍상수 감독 생각났다.

그저 롱테이크로 카메라를 걸어놓기만 해도 그의 영화가 될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러다, 서 있는 사람이 아닌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문득...생각났다.

서 있는 사람, 주인된 사람이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풍경과 어울리는 때를 기다렸고, 때를 만나 한 컷.

문화 DNA라고 해야하나, 저 어울림을...

오랜 시간을 한 곳에서 보낸 모든 것들은 수많은 DNA를 가직 있으므로 그 무엇과도 어느지점에서는 닮아있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어울리는... 모두가 자기 결이 되는... 시간이 만든 DNA

우리 모두가 불안하거나 외로운 이유는 우리에게 시간이 축적된, 바닥 기억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끈이 튼튼하게 이어진 꼬리연처럼 신나게 거침없이 날아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만약, 시간이 가장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축적된 저 철물점과 같은 곳이 우리 곁에 수없이 만나면

우리는 불안하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적선시장 안 [통영생선구이]집에서의 만찬이다.

그는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오늘 맛있는 것으로 부탁한다고...그렇게 예약을 했다고 했다.

우리는 뭐가 나올지 모르는 채, 기대했다.

 

멍게가 나왔고, 해삼이 나왔고, 하모구이가 나왔고, 문어숙회가 나왔다.

난 좀 아팠었다. 약을 먹었을 정도로...

그런데 하나씩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점점 아픈 것이 사라졌다. 그래서 소주도 한 잔 먹었다.

 

미셸 퓌에슈의 [먹다]에 나오는 말이다. 

 

밥을 먹는 것은 음식으로 우리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이 몸을 만든다.  

 

무슨 말인지 몸으로 느꼈다. 이 음식들 중 양념이 된 것은 없었다.

원시인처럼 음식 그대로를 먹었다.

그래로의 힘!

 

 

언젠가 유성용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도다리 쑥국을 만드는 것이 포스팅 된 적이 있었다.

그 때 보았을 뿐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다.

 

다시 미셸 퓌에슈의 [먹다]에 나오는 말이다. 

 

이렇게 강렬한 즐거움은 거의 관능적이다!

 

그렇다! 어떤 음식을 만났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관능적이다.

어디에선가 본 듯 한 말... 성욕이 끝나는 인생지점에서 식욕이 살아난다고! 훅!

인간은 어찌 되었건 관능을 즐기는 존재인 것으로.

 

영화 [아이 엠 러브]에서 틸다 스윈튼이 음식을 먹던 그 관능적인 장면이 생각났다.

그 정도였다.

하나도 안 아팠다. 하나도 안 아프다고 이야기했다.

 

다시 미셸 퓌에슈의 [먹다]에 나오는 말이다. 


"맛있는 음식은 언제나 기분을 좋게 해주며, 함께하는 맛있는 식사는 삶의 다른 부분이 팍팍할 때라도 순식간에 분위기를 훈훈하게 만드는 확실한 방법이다.

맛본다는 것. 새로운 요리나 이국적인 음식, 혹은 할머니가 해 주신 요리를 맛본다는 것은 언제든 새로운 즐거움의 원천을 발견하는 일이다.

음식은 삶과 문화에 있어서 근본적인 역할을 하며, 개인과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 요소이다."

 

다행이라며, 원래 좋은 음식을 잘 먹으며 모든 것이 다 괜찮다며 한동안 음식의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밥을 먹으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난 미셸 퓌에슈라는 저 멀리 프랑스에서 사는 철학자에게 꽂혔나보다.

그의 간단함이 좋다.

다시 미셸 퓌에슈의 [먹다]에 나오는 말이다. 

 

먹는 것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생태적인 행위이다.

 

...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꽤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 오랜 시간이 잘 쟁여진 곳을 찾았고, 그 곳에 남아있는 누군가의 좋은 기운을 이어받아

그 날 그 곳에서 내가 만든 좋은 기운을 한 켜 쌓아두고 왔다. 어느날 무엇인가가 그리울 때 그곳에 다시 간다면

내 몸 가장 밑바닥에 재워진 어떤 기운이 벌떡하며 자신의 출생지를 반길 것이다. 그럼, 그때 나는 또 괜찮아지겠지.

서울의 시간들이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는!

 

이명박! 오세훈!은 우리들의 너무 많은 시간들을 갈아 엎어버렸어. 바보!

 

 

 

[아득한 그의 한마디]

 

나의 계산철칙은 이래.

나보다 나이가 많으냐 적으냐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느냐, 적게 버느냐

남자이냐 여자이냐

너는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아. 너라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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