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종도 옆구리에 그 유명한 을왕리해수욕장을 지나 좀 한적한 왕산해수욕장.
서해의 일몰을 보자꾸나.하고 갔지.
난 지정학적으로 보면 서쪽에 살고 있었던 거였어.
한 시간 안에 서쪽 끝이니...
난 서쪽이었어.
그걸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
아마 동쪽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
왜냐면, 나의 어린 시절은 동해바다와 함께 였으니, 그렇게 믿은 거지.
그런데 아니었던거지.
난 서쪽에 살고 있었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몰랐어. 그걸 왜 몰랐어? 라고 묻는다면,
(진짜 곰곰히 생각해보니) 여섯살 이후에 업데이트를 하지 않았나보지;;
한반도의 수많은 서쪽 끝 중 하나인 왕산해변에서의 일몰.
해가 보인 것은 딱 저기까지였을때가지였고,
그 후엔 스스륵 사라졌다.
이런 날을 일몰이 없었다라고들 말한다.
일몰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지만,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그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실도 달라진다.
눈으로 본 것이 사실이라면, 일몰은 없었다.
과학적 근거들로 보는 것이 사실이라면, 일몰은 있었다.
일몰日沒: 해가 짐. (비슷한 말) 일입日入
일입라는 말 매력적이다.
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들어간다는 것?
우리가 잠을 자기 위해 이불속으로 들어가듯...
이토록 어여쁜 홍조를 띠고 바닷속으로 푹~
왕산의 일몰을 보고 인천공항에서 88도로를 잇는 길을 직진하다가
계속 직진하고 싶다는 생각이 끓어올랐다. 더 직진하고프다.
이대로 직진을 하면 어데로? 동쪽이구나. 나의 동쪽!
직진결정! 하였다.
왕산해변에서 한번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속초까지 내 달렸다.
다행히 나의 몽이의 기름은 아침에 빵빵하게 넣었던 터라 멈출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던 거지.
[아이역할]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다가 '아이역할'이라는 말이 기억난다.
아이역할..어른인데 아이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이런 거지. 애 같다! 라는..
11시에 속초도착,
캄캄한 속초해변을 한 번 걸어주고, 곧 찜질방으로 직행.
샴푸, 폼클렌징, 속옷은 그곳에 샀다. 스킨로션은 비치된 것으로 그냥 썼다.
그곳의 스킨로션을 쓰는 사람은 없었고, 간혹 있어도 몸에 겨우 바르는 그것을 난 얼굴에 팍팍 발랐다.
어떤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지만, 제대로 무시해줬다.
찜질방의 큰홀은 잠자기에 추웠지만, 그것도 무시해줬다.
몸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잠이 필요하면 잘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잠들지 않겠지....결론은 잤다.
일출을 보자!
일어나자 바로 속초바다로 나갔다.
전날의 일몰처럼 일출도 없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툭하고 해가 나타났다. 해가 떴다.
이 또한 사실이 무엇이든... 난 이미 뜬 해를 보았고, 나는 목적을 달성했다.
한그릇의 아침밥을 일찍 문을 연 첫번째 식당에서 먹고, 다시 집으로!
전날밤의 캄캄한 도로를 운전하면서, 내일 아침에 보자! 그랬던
내 눈에 펼쳐질 멋진 산들의 풍광을 맘껏 즐겨주리라! 그랬던.
속초시내에서 보이는 설악산이 그랬고, 미시령터널을 지나면서 본 미시령이 그랬다.
역시, 그랬다.
제대로 운동한 몸짱의 몸을 보는 듯, 힘찬 근육과 간간이 드러나는 뼈대가 섹시함 그 자체다.
나도 모르게 우와 감탄을 연발했다.
저 산을 보고 설레었던거지.
전날의 일몰과 그날의 일출이 아니더라도, 저 산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한 수 더!
간만에 들국화의 노래를 틀어놓고, 크게 따라부르며 흥분을 유지시켰던거지.
달리고 싶었던 나의 간절한 소망.
일몰과 일출을 하나의 여행에 꾸린 것. 그리고 큰 산
이게 바로, 마스다 미리의 '아이역할'이다.
아이역할을 할 때의 쾌감,
그것은 내가 이미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고,
아이는 자유로와 천진하다는 것이지.
아이역할이 맘에 꼭 든 날이다.
비록, 마스다 미리가 [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말한 것처럼, 그럴지라도
어쩌면....
어쩌면....
내게 우주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우주가 없다면, 내가 어딘가로 처음 하는, 처음가는 어떤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득한 그의 한 마디]
시간은 벽에 걸려있는 것,
나는 말이지. 벽에 걸린 시간을 꺼내입고 외출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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