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질문은 이랬다. 작가님의 목표는 뭐예요?
그는 공부하는 것이 좋고,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의 질문은 그가 보는 멀리를 함께 보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답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멍하니 그의 얼굴을 보다가 사실인가요? 하고 다시 물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렇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하게 된 것은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 가늘고 길게 살겠다는 그의 말때문이었다.
내가 아는 그는 그런 성향의 사람이 아닐 뿐더러, 혈기왕성한 청년, 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早老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죠.
그는 신분차이가 혹은 능력차이가 심한 유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본인의 그릇을 알고 그 능력 안에서 즐기는 것이 익숙하다고 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본인의 그릇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잘 할 수 있고, 재미있을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자신이 차를 잘 고치는 것이 유일하게 잘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했다.
성인이 된 뒤에 왜 일생을 노력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성인이 되면 인생을 즐겨야 한다며, 한국에 돌아와 가장 힘들었던 것 중에 하나가 목표라는 것 때문이었다고 했다.
목표...가 힘들었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차이밀크티를 마셨고, 나는 버니니를 마셨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뭔가 한 잔 더 생각이 났다.
이 집 글뤼바인 맛있는데 한 잔 드실래요?
우리는 글뤼바인을 시켰고, 맛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는 괜찮다고 말했다.
사람과의 만남이 거듭 될수록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있는데, 느낌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말과는 달리 괜찮지 않은 듯 했다.
뭐가 문제인가요?
그는 유럽에 있으면서 공작의 집에 요리사로 지냈던 이탈리아 할머니에게 요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말들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더랬다.
글뤼바인은 프랑스사람들이 봄이면 집집마다 1년치 포도주를 사서 쟁여놓고 먹는데,
맛있는 것부터 마시고 나면, 가장 맛없는, 저가의 포도주만 남을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을 맛있게 먹는 것을 목표로 개발된 것이 글뤼바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글뤼바인은 싸구려 포도주 냄새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샹그리아 또한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둘 다 포도주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것.
글뤼바인은 계피를 으깨어 최대한 향이 많이 나게 하고, 거기에 강한 향을 첨가하기 위해 생강, 정향, 바질 같은 것을 넣어 싼 포도주 냄새를 잘 덮어야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한다. 샹그리아는 반대로 좋은 포도의 향을 잃어버린 포도주의 향을 레몬, 오렌지 등의 과일을 첨가해 향을 보태는 것이란다. 더하기 빼기... 같은 목적을 위한 반대.
개인 취향이겠지만, 싸구려 포도주만으로 만드는 글뤼바인이라지만, 괜찮은 카페에 잔으로 나오는 포도주보다 더 비싸게 팔고, 또한 그걸 마시는 기분 또한 만족스럽다. 더하기와 빼기를 잘해서, 싸구려임을 인정하고 자신있게 더하기 빼기...
right now
구정 제주 여행부터 참 좋다.
만나는 이들마다 스승인듯 내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마치 돌탑을 쌓고 있는 내게 적당한 돌 한덩이씩을 가슴에 안겨주는 듯 하다.
경쟁사회에서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고 배웠고 익혔으나, 내가 경쟁사회에 있을 것인지 아닌지는 그 이전 단계의 선택이어야 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기 위해 혹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다.
가늘고 길게 조용히 주어진 삶을 살다보면, 하루에 세끼를 먹는 음식은 점점 더 맛있게 진화한다고 덧붙였다.
내가 좋아하는 글뤼바인을 볼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이다.
삶을 딱 1미터 뒤따라가는 사람.
어떠세요?
괜찮네요!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한 일, 실명(實名)과 별명(別名)의 차이 (0) | 2014.02.20 |
---|---|
어긋남 (0) | 2014.02.13 |
제대로 팔팔 끓는 법 (0) | 2014.01.21 |
별 (0) | 2014.01.17 |
사막 (0) | 2014.0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