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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하얀 국화 스무송이

by 발비(發飛) 2012. 8. 19.

4월에 '이헌승이 죽은 지..20년'을 쓴 적이 있었다.

 

두  달도 더 지난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쓰지 않는 메일이라 이제야 봤다고...

스팸으로 같이 버릴 뻔 했다고...

어떻게 된 거냐고..

소식을 완전히 끊으면 어떡하냐고...

 

'이헌승이 죽은 지..20년'이 되는 날에 나는 이리저리 수소문을 하여 오빠의 친구였던 교열이 오빠를 찾았었다.

이메일 주소가 겨우 어디서 나왔다.

메일에 20년이라고..., 내 핸펀 번호를 남겼었다.

 

나는 오랫동안 교열이 오빠의 전화도 받지 않고 핸펀번호를 바꾸면서 번호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했다.

 

어떻게 지내냐고... 꼭 한 번 보자고...

그동안의 근황을 말하고 물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정성껏 대답했다.

 

그리고  한 두 달, 몇 번의 전화가 왔었고, 만나자고 하였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지난 주 교열이오빠는 연수기간이 끝나서 회사로 복귀하기 전,

이젠 연고가 없어져서 갈 일이 없었던 안동에 갔다 올 거라고, 그런다.

오직 헌승이 한테 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다.

그럼 거기를...

 

우리 가족은 오빠가 어디에 뿌려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후사를 두지 않고 요절한 사람은 마치 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없애는 것이 산 자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인 듯이 오빠 친구들에게 가족들은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곳에 오빠를 뿌리고 오라고, 아무도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주도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거기를... 간다고 했다.

내가 같이 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알아야겠다고 했다.

가지 말지... 그런다.

오빠는 알고 있는 곳을 내가 왜 몰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그럼 가자고.. 그런다.

그래서 나는 이번 주 토요일에 오빠가 뿌려진 곳을 처음으로 간다.

 

오늘 아침 자유로를 달렸다.

차창을 열고 운전을 하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 몸이 휙휙 돌아갈 정도였다.

나는 오래 전 처음을 썼던 시가 생각난다.

국화와 물이 나오는, 오빠에 관한 시였다.

 

다가올 토요일에 오빠 앞에 서 있는 내가 그려졌다.

하얀 국화를 들고 서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다발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스무송이가 되었다.

한 해 한 해.. 한 송이의 국화, 나는 오빠가 없었던 한 해 한 해를 떠올리며 오빠에게 한 송이씩 줄 것이다.

마치 한 해 한 해 오빠에게 갔었던 것처럼.

 

 

하얀 국화 스무송이를.

합정동에 있는 꽃집에 하얀 국화 스무송이를 미리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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