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 당신이 길을 가다,
아니다.
정확히...
서점에서 정신수양을 위한 책을 읽다가, 고르다가... 아주 평정한 마음으로 나오다가,
서류가방을 가로 맨 직장인과 스쳐 지나가다,
멈칫,
그가 당신을 쳐다보면서,
"부끄러운 줄 알아!"
하고 말을 했다면, 당신은 어쩌겠는가?
나는 이랬다.
이미 스쳐 지나가 버린 그를 돌아다 보았다.
물론 당황스런 표정이었겠지.
그는 말에 걸맞는 경멸의 눈빛을 내게 꽂고는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의 등을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잠시 멍하게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는 좀 더 오래도록 멍했다.
때마침 몇 날 며칠 지겹도록 뜨겁던 하늘에 잔뜩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
이렇게 더운 날, 그는 술을 몇 잔 먹었나보다.
분명코 내게 한 말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 시점에 그를 스쳐갔다면 누구라도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자유로울 수 없다.
오늘처럼 아침 10시 반에 사무실에서 나와 종일 사람을 만난 날이면 더욱 그렇다.
세 차례에 걸쳐 사람들을 만났다.
부끄러운 줄 알아... 나는 만남에 몰입을 하였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미친 개가 짖는 소리라고 할 만한데,
나는 그 소리를 그렇게 생각해도 될 만한데,
그 소리를 다큐로 받아 나에게 그 끝점을 두는 것이 강박이라고 할 만한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로는 그 소리가 그냥 지나가지지는 않는다.
뜨거운 감자처럼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알지도 못하는 그가 한 말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입 안이 뜨겁기만 하다.
원죄를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하자.
내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원래 가지고 태어난 말도 안되는 원죄의식, 죄의식이라고 하자.
성당을 다닐때,
내가 걸려했던 것이 미사중에 하는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였다.
정말 잘 반성해보면 모든 것이 내 탓이었고, 내 탓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 없었더랬다.
지금도 성당을 비롯한 종교를 거부하는 이유는 자기 성찰 후에 오는 반성모드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
남의 핑계를 대자면, 이 말을 듣고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는 반성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니가 나를 알아? 내가 뭐가 부끄러워! 너나 대낮부터 술 먹고 어디다 시비야! 너나 부끄러운 줄 알아!"
너무 긴 가?
암튼 이 정도로 하면 반성모드에서는 벗어나는 것 같기는 한데,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없어 보이잖아.
같아 보이잖아.
겸손! 하게 싸 안으면, 부끄럽지 않을 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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