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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듣는 曰(왈)

[알베르 카뮈] 여행의 가치

by 발비(發飛) 2012. 5. 15.

발레아르에서 : 지난 여름

 

여행이 가치를 이루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어느 한 순간, 우리나라나 우리 나라 말과 그토록 거리가 먼 곳에서 (프랑스어로 된 신문 한 장도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리고 낯선 카페에서 어깨를 맞대로 앉을 사람이 그리운 이런 저녁들도 그렇다) 어떤 막연한 두려움이 문득 우리를 사로잡고 옛 습관들의 보금자리로 되돌아가고 싶은 본능적 욕망이 밀려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여행이 가져다 주는 가장 확실한 선물이다. 그 순간 우리는 열에 들뜨는 동시에 구멍투성이가 된다. 아주 조그만 충격도 우리의 존재를 밑바닥부터 뒤흔들어 놓는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만 모아도 영원이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고행이라고 본다. 교양이란 것이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 즉 영원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교양을 위하여 여행을 하는 것이다. 쾌락은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파스칼이 말하는 위락(divertissement)이 신에게서 멀어지게 하듯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심각한 지혜인 여행은 우리를 그것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알베르 카뮈 [작가수첩] 중에서

 

여행은 언제나 고통스러웠다고 나도 고백한다.

어쩌면 새로운 모든 것들은 고통에 가까운 느낌이다.

새로운 회사, 새로운 일, 새로운 사람, 새로운 옷... 이 모든 새로운 것들은 익숙한 것들이 누리는 자연스러움을 배반한다.

적어도 매순간 몰입을 해야한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영혼들을 모아 적어도 얼마동안은 지속적으로 몰입이 되어야 한다.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잠시도 휴식을 갖지 못하는 고통스러움이 계속 된다.

낯선 식당에서 메뉴를 시키는 것도

마주 앉은 사람없이 그 밥을 먹는 것도

아침에 체크인한 호텔에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눕는 것도

한 밤 중에 선 잠에서 깨어 검은 천정을 둘러보는 것도

창 밖에 퍼런 아침이 오는 광경을 보는 것도

모든 것이 낯설고 예민하다. 그것이 고통이다.

 

휴식을 하러 가는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여행지에서 매 순간 결의를 다진다. 그 결의가 나를 한동안 붙드는 힘이 되는 것이다

현실 어느 공간에서도 결의를 다질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나의 생각보다는 누군가의 생각으로 나는 여며지므로, 나는 나를 해체할 수 밖에 없다.

이 때 엄청난 모순이 시작되는 것일런지 모른다.

결국 해체되어갈 자신이 없다면, 해체할 것이 없으므로 나는 무능해지는 것이다.

해체되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여행, 까뮈가 고행이라는 말을 쓴 것도 아마 이런 의미일 것이다.

진정 고행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것이 다음 생이라기 보다는 카르마를 극복하기 위한 이 생에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끝없이 해체와 결의를 반복하며 카르마를 극복하는 것이다.

 

한동안 새로운 것에 나를 맡겼다.

그리고 나는 제법 해체되었다.

 

또 새로운 것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해체될 것이 남아있는 내가 있기를 기대해보지만, 나는 아마... 내가 생각컨데 ...해체될 내가 남아있지 않은 느낌이다.

여행을 떠나야 할 것이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 한다.

 

구멍 투성이

존재의 밑바닥

두려움

 

교양이라는 것이 사람의 가장 내밀한 감각, 즉 영원에 대한 감각의 훈련이라고 정의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교양을 위해서 여행을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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