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시인은 사랑을 이루기엔 이런 저런 것들이 꽤 많이 걸리는 모양이다.
그래서 소주 한 잔 놓고, 나타샤를 앞 둔 듯 ... 아닌 듯... 중얼거린다.
산골로 가자. 산골로 가자.
그럼 된다. 그럼 된단다.
이런 저런 걸리는 것들은, 문제는 '여기'이기 때문이니,
세상 버리고, 그저 산골서 살자하는 거다.
어느덧 생각 속에 산골서 산다.
나타샤가 곁에 있고,
그곳도 흰눈이 푹푹 내리고,
...
당나귀도 축하의 세레모니를 보낸다.
나도 축하를 보낸다.
그저 이런 것이 아름답다 생각한다.
풍경속에 묻은...풍경처럼 생긴 것이 아름답다 생각한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0) | 2013.01.28 |
---|---|
[도종환] 담쟁이 (0) | 2012.11.28 |
[송경동] 주름 (0) | 2011.12.21 |
[전윤호] 순수의 시대 (0) | 2011.12.19 |
[이영광] 저녁은 모든 희망을 (0) | 2011.12.0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