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모든 희망을
이영광
바깥은 문제야 하지만
안이 더 문제야 보이지도 않아
병들지 않으면 낫지도 못해
그는 병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전력을 다해
가만히 멈춰 있기죠
그는 병들었다, 하지만
나는 왜 병이 좋은 가
왜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나
그는 버르적댄다
습관적으로 입을 벌린다
침이 흐른다
혁명이 필요하다 이 스물네 평에
냉혹하고 파격적인 무갈등의 하루가,
어떤 기적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겐 죄가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벌받고 있지 않는가, 그는
묻는다, 그것이 벌인 줄도 모르고
변혁에 대한 갈망으로 불탄다
새날이 와야 한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듯이 저녁이 온다
빛을 다 썼는대도 빛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는 안 된다
저녁은 모든 희망을 치료해준다
그는 힘없이 낫는다
나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나는 무장봉기를 꿈꾸지 않는다
대홍수가 나지 않아도,
메뚜기 떼가 새까맣게 하늘을
덮지 않아도 좋다
나는 안락하게 죽었다
나는 내가 좋다
그는 돼지머리처럼 흐뭇하게 웃는다
소주와 꿈 없는 잠
소주와 꿈 없는 잠
그날 나는 화가 났었다.
말도 안되게 그 자리가 답답했다.
모인 사람들의 말은 마치 유리어항 속 붕어의 뻐끔거림처럼 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체 아무것도 아닌 듯 했다.
뻐끔거림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나는 결국 어항 속에서 빛을 바래가고 있는 플라스틱 수초와 같았다.
움직이지.
그곳도 물이라고, 물결에 따라 움직이지.
그 자리가 너무 화가 났었다.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올 궁리를 했으나, 방법이 없었다.
자리를 옮기자고 한다.
뻐끔거리는 것이 지겨웠던게지
그들은 어항이 아니라 수족관으로 옮길 작정인듯 종로거리를 희번떡 거린다. 오직 그때만 희번떡거렸다.
나는 그 틈에 통화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야기를 그리 나누지도 않은 사람,
오직 최근 통화를 눌러 그대로 말을 했다.
소리가 들렸다.
그의 말소리는 내 귀에, 나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약속이 있어요. 저 먼저 갈게요.
그 길로 종각을 지나, 광화문까지...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들을 보았다. 책 표지에 "저녁은 모든 희망을"
평대에 기대어 서서, 이 시를 읽었다. 그리고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재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듯이 저녁이 온다
이 부분을 핸드폰 메모작성에 쳐 넣었다.
나는 모든 자폭을 옹호한다. 나는 재앙이 필요하다. 나는 천제지변을 기다린다. 나는 내가 필요하다. 짧은 아침이 지나가고 긴 오후가 기울고, 죽일 듯이 저녁이 온다. .....
시인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했다. 작은 소리로 읽어봤다. 이렇게 말하자, 화가 가라앉았다.
내 화를 가라앉게 했던,
참 오랜만에 시가 나를 가다듬어 주었던, 참 오랫만에 다시 시를 사랑하게 했던, 시 [저녁은 모든 희망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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