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도굴범
전윤호
공포영화에 고용된
엑스트라가 나야
비명 한 번 지르고 푹 쓰러지면 일당을 받지
폐허와 시체로 가득한 여긴 으시시해
피를 담은 양동이가 숨겨진 골목마다
보이는 모든 인간이 살인마라니까
절대 등을 보여선 안 돼
주연 한 번 하려면
적어도 수백 명을 죽여야 한다구
정해진 배역도 없고
대본대로 진행되지도 않아
먼저 죽으면 그냥 단역이지 뭐
그런데 말이야
뭐든지 돈 내는 제작자 맘대로 인
이 시대에도
도굴범이 노릴 만한 처녀무덤이 숨어 있을까
당신의 시는 나와 맞지 않아요. 난 당신의 시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어요. 못해요.
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단지 어떤 댓구도 할 수 없어요.
어떡하라구요.
그는 화를 냈다. 그럼 나는,
그래요 난 삼류예요. 난 삼류라서 보고도, 읽어도 말하지 못하는 시가 있는 거라니까요.
난 이제 일류가 된 건가?
[순수의 시대]라는 시집이 나온지 10년이 넘었다. 우연히 발견한 그의 시집,
그의 시를 읽다가, 어느새 시 안에 앉아 있는 나를 보았다.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6,7행 정도 사이 어디쯤 있는 보도블록 턱에 걸터 앉아 맞은 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화촬영현장을 보고있다.
투명인간, 젤리인간처럼 촬영장 사이를 슥삭거리며 훑고 다니기도 한다.
컷컷 사이,
길 건너 앉아있는 나, 혹은 촬영장 안의 투명인간, 혹은 젤리인간, 혹은 아바타...,가 가끔 한 몸이 되어,
이 시대에도 가난해 빠진, 그래서 한 탕을 노리는 도굴범이 노릴만한 처녀무덤이 숨어있을까?
카메라 셧터 소리 찰칵했다.
모니터에 붉은 눈동자가 몇 개가 번뜩거린다. 도둑고양이의 눈..., 컷!
우리는 결국 자신의 삶을 챙기기 위해 도굴범의 눈이 된다.
그것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그래도 보물 가득한 처녀무덤을 꿈꾼다.
폐허일수록, 비록 그것이 가짜일지라도 말이다.
결국은 도둑!
무엇보다 시인의 시에 말이 생각났다. 말한 것보다 더한 말들이 안에서 꼬물딱거린다.
반갑다.
그는 10년전, 광장에 걸게그림으로 걸었어야 할 시를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
난 이 시인의 시를 읽어내지 못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내 작은 방 안에서든, 광장에서든 자연스럽게 흐른다.
죄송하고도,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하....
정말 있을까?
이 시대에도 도굴범이 노릴 만한 처녀무덤이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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