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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하이서울 마라톤 참가기)

by 발비(發飛) 2011. 10. 10.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김종삼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이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어제 일요일 아침 8시 광화문 서울시청 광장에서 하이 서울 마라톤 대회 중 10키로미터 단축코스를 달렸다.

지난 화요일 한강 10킬로 미터를 달린 기록은 1시간 5분 55초,

어제의 기록은 1시간 2분 58초.

기록 단축이다.

 

달리는 내내 시계를 보았다.

한 시간안에 들어오는 것도 가능한 듯 했기때문에 나름 시간배분에 집중했다.

시청광장을 지나, 종로, 동대문... 뚝섬까지 이어지는 길을 달렸다.

달리기 전에는 생각했다.

서울을 관통하는 길을 달리며,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리라.

뛰면서 구경하듯 지나는 사람들을 보리라. 그곳에 나의 인물들이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간혹 왜 뛰지? 하는 눈빛으로, 어떻게 뛰지? 하는 눈빛으로 땀범벅이 된 나를 보던 사람의 얼굴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사람보다 앞서는 '5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스스로 목표로 잡은 5분때문에 대부분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달렸다.

마지막 1.2 킬로를 남겨두고, 단 1분도 단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왜 그리도 받아들이기가 힘들던지... 이렇게 죽을만큼 힘든데, 단 1분이 허락되지 않다니... 하는 마음이었다.

골인지점에서 1시간 5분 ?? 이라고 적힌 시계가 보았다. 

아... 그저 죽도록 달렸을 뿐이었고, 나는 서울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진정시키고..

뜨거운 무릎과 발목을 문지르고,

단단해진 종아리와 허벅지를 풀어주었다.

 

옷과 물건들을 챙겨서 나가는데, 기록을 안내하는 문자가 왔다.

1시간 2분 58초...

나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3분이 당겨진 시간이다. 아니.... 이런 멋진 일이... 시간이 단축되었다.

나아졌다는 것이 이렇게 기쁘다니, 단 3분인데..

옆에 같이 뛰었던 직원들도 뛸 듯이 기뻐했다.

 

3분....이었다. 그런데 일생일대에 경험하지 못했던 대단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늘 말한다.

일을 하고 있지만,

열심히 달렸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3분에 목숨을 걸고 달리고, 온 힘을 다해 뛰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 그리고.....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시의 앞을 다시 읽어본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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