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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광화문

by 발비(發飛) 2011. 9. 23.

 

 

 

저녁 약속에 늦었다.

6시 30분까지 종각을 가야하는데, 이미 6시 30분이 지났다.

 

버스에서 내리자 먼 곳을 보니 초록불로 15초가 깜빡인다.

15초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 뛰었다.

하지만 광화문 한 가운데 있는 인도에서 빨간불로 바뀌었고,

교통경찰은 내게 건너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앞뒤 양옆을 돌아다보니. 그렇게 뛰어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다.

결국 동서남북으로 길게 뻗은 광화문 사거리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있다.

광화문을 수없이 다녔지만, 이렇게 덩그런 느낌이라니...

핸펀을 꺼내 북으로 이순신 동상을, 남으로 달려오는 차들을 찍었다. 

 

약속 시간은 지났는데, 서울 한복판 그 넓은 도로 한 가운데 내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치 진공상태처럼...

약속도, 차들도, 이순신장군도 현실이 아닌 것처럼 아득했다.

석양이 깔려서 그런지 나도 아득한 것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보이지 않는 유리컵을 덮고 사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던 그때처럼

소리도, 빛도 모두가 멀리서 오는 것처럼 아득했었다.

 

다시 초록 신호가 떨어지고, 교통경찰은 횡단보도 가운데로 나와 건너라는 수신호를 보낸다.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자,

나는 마법에 풀린 듯 빛과 소리들이 허물 벗겨지듯 선명히 다가왔다.

늦은 시간도 다시 실감 나 힘껏 뛰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발끝의 느낌이 쿵쿵하고 머리에서 울렸다.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오랜만이라고 악수를 하는데 손바닥에 그의 체온이 닿았다.

 

마법이 풀린 것처럼 아주 신기해서 웃었다.

내가 웃자, 그는 자신이 반가워서 웃는 줄로 아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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