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다 간 방
김경주
불을 끌고 방 안에 누워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잠시 두드리고 가는 것이었다
이 밤에 불빛이 없는 창문을
두드리게 한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곳에 살았던 사람은 아직 떠난 것이 아닌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문득
내가 아닌 누군가 방에 오래 누워 있다가 간 느낌.
이웃이거니 생각하고
가만히 그냥 누워 있었는데
조금 후 창문을 두드리던 소리의 주인은
내가 이름 붙일 수 없는 시간들을 두드리다가
제 소리를 거두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곳이 처음이 아니 듯한 느낌 또한 쓸쓸한 것이어서
짐을 들이고 정리하면서
바닥에서 발견한 새까만 손톱 발톱 조각들을
한참 만지작거리곤 하였다
언젠가 나도 저런 모습으로 내가 살던 시간 앞에 와서
꿈처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 방 곳곳에 남아 있는 얼룩이
그를 어룽어룽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이 방 창문에서 날린
풍선 하나가 아직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을 겁니다
어떤 방을 떠나기 전, 언젠가 벽에 써놓고 떠난
자욱한 뭄장 하나 내 눈의 지하에
붉은 열을 내려 보내는 밤,
나도 유령처럼 오래전 나를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자판을 두드리다가 이런 시 한편을 내 손으로 두드릴 수 있다는 그것이 행복하지 아니한가.
건조한듯
모른척하는 듯 하지만
시인의 삶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그리고 손길이 그대로 느껴진다.
누군가 살던 방,
방의 역사에 대해 경의를 표하고 나의 짐을 푸는 사람이 보는 세상이다.
그 세상은 연민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던 겹겹이 쌓인 삶에 대해 예의를 갖춘다.
어느 곳, 어느 시간을 살았던 삶을 찬찬히
지층을 훑어 그 시대를 가늠하듯
자신의 삶을 멈추어 가늠할 줄 아는,
그리고 타인의 지층을 손으로 쓰다듬어 가면 느껴 가늠해 볼 줄 아는,
어느 시간에 두고 온 자신, 그 하나, 하나에 안부인사를 하는,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나의 시간 어디 어디에 아직도 머무르고 있는 나의 영혼들에게 안부인사를 한다.
거기가 아니라고 떠난 나는
그냥 또 살아갈터이니, 그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살아갈터이니.
그 집에서 머물러 있으라고,
또 가끔 안부인사 전하겠다고,
참 아름답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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