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송곳
정병근
이 기억을
모두 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시간이
어찌 지금만일 수 있으리
물방울이 맺힌다
한 방향으로만 걸어온 기억이
마지막 시간을 쥐어짜고 있다
올 데까지 온 기억의 장렬한 최후
결심을 끝낸 물방울이 떨어진다
뒷물방울이 앞 물방울의 목을 친다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나는 머리통
똑, 똑...
맨몸을 던져 바위를 뚫는
저 집요한 기억의 송곳
맨몸을 던져 바위를 뚫는 저 집요한 기억의 송곳.
내게도 그런 송곳이 있지.
누구나 그런 송곳이 있겠지.
지나간 것들은 지나갔다고들 생각하지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지
몇 몇 거대한 기억들은 제 덩치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나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 말고...
기억의 자잘한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해
그냥 둔 것들.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 과거들이 모인다.
시간을 두고 모인 것들임에도 왜 그것들은 닮았나.
그 때 그것들은 분명 달랐는데 왜 그것들은 서로 결이 같나.
어느날 갑자기 하나가 되나.
그리고 묵직하게 뚫고 나오나.
살을 찢고야 나오겠다고 하나.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모를 내 기억들이
대체 왜 그들은 뭉쳐져 하나인가.
시인은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나
나는 이런 마음으로, 한 편의 시를 읽으면 억울했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억때문에, 그것이 그것이구나 하면 시를 읽으며 억울했다.
억울할 일이 없는데,
더워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모를 일인데 견디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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