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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물방울, 송곳

by 발비(發飛) 2010. 8. 9.

물방울, 송곳

 

정병근

 

이 기억을

모두 잊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시간이

어찌 지금만일 수 있으리

 

물방울이 맺힌다

한 방향으로만 걸어온 기억이

마지막 시간을 쥐어짜고 있다

올 데까지 온 기억의 장렬한 최후

 

결심을 끝낸 물방울이 떨어진다

뒷물방울이 앞 물방울의 목을 친다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나는 머리통

 

똑, 똑...

맨몸을 던져 바위를 뚫는

저 집요한 기억의 송곳

 

맨몸을 던져 바위를 뚫는 저 집요한 기억의 송곳.

 

내게도 그런 송곳이 있지.

누구나 그런 송곳이 있겠지.

 

지나간 것들은 지나갔다고들 생각하지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지

몇 몇 거대한 기억들은 제 덩치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나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 말고...

기억의 자잘한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해

그냥 둔 것들.

그것들이 하나 둘 모여 ..., 과거들이 모인다.

시간을 두고 모인 것들임에도 왜 그것들은 닮았나.

그 때 그것들은 분명 달랐는데 왜 그것들은 서로 결이 같나.

어느날 갑자기 하나가 되나.

그리고 묵직하게 뚫고 나오나.

살을 찢고야 나오겠다고 하나.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모를 내 기억들이

대체 왜 그들은 뭉쳐져 하나인가.

 

시인은 무슨 마음인지는 모르나

나는 이런 마음으로, 한 편의 시를 읽으면 억울했다.

내게 있는 줄도 몰랐던 기억때문에, 그것이 그것이구나 하면 시를 읽으며 억울했다.

억울할 일이 없는데,

더워 견디지 못하는 것인지 모를 일인데 견디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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