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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Reh 가실래요?

by 발비(發飛) 2009. 9. 20.

1.

토요일 첫 버스를 타고 산청에 다녀왔다.

가을이라 산은 높고 구름은 예뻤다.

산 가까이 논에는 벼가 익어가고 있었고, 밭에는 고추와 콩..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그 길을 한참 걸었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오려고 산청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한 시간이 남아서 ..

그 앞에 있는 제과점에서 한 개 밖에 없는 테이블에 앉아 빵 하나와 우유 한 잔을 시켜놓고 ... 밖을 보았다.

산청 사람들은 제과점을 들락거렸고,

외지인들은 버스 주위를 오락가락했다.

그들을 구경하면서... 잠시 자유를 느꼈다.

자유라는 것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것이구나...

여행은 나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구나...

 

2.

회사에서 자리이동이 있을 것 같아 책상 위에 널부러져있던 것들을 잠깐 정리했었다.

책들이 꽂힌 구석자리에 얼마전 심히 아팠을 때,

병원에서 준 물약병이 두 개가 있었다.

다 먹지도 않고...

그렇다고 버리지도 않은 채 박혀있었다.

 

약국에서 물약을 조제하여 담은 얇고 투명한 비닐병을 본 순간을 기억한다.

이 병...

이건 꼭 챙겨둬야지. 했던

 

아주 얇고 투명하고 가벼운 그 병은 작은 구멍이 난 뚜껑과 겉뚜껑이 있는.. 모두 알 것이다.

병원을 좀 더 가야지. 그리고 몇 개의 병을 더 얻어야지.

하나는 샴푸병, 하나는 세제병, 하나는 로션, 스킨, 선크림도 잘하면 넣을 수 있을 지 몰라....

무겁지도 않을테고

자리차지도 하지 않을테고

정말 딱이다.

 

인도 라닥지구 '레'에 가면 이 병은 마치 항아리처럼 부풀것이다.

잘 열어야지..

내용물을 쏟아져 나오지 않도록...

 

난 자연스럽게 레를 생각했다.

그 어느 하루를...

 

2006년 7월 3일이군!

그러니까 사진을 보니 6월 30일 히말라야를 넘어가고 있으니. 그 하루전에 마날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24시간을 짚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었다.

짚 안에는 휘발유가 실려져 있어... 멀미에, 고산증에 히말라야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도착한 레에서 며칠을 꼼짝하지 못하고 앓았다.

해발 3500미터, 참고로 난 3000을 넘으면 온 몸이 고산에 반응한다.

인도 병원에서 준 약은 알약의 크기가 엄지손톱만했었다.

그 약을 넘기고 1분도 되지 않아 난 쓰러져서 잤다. 그리고 거의 하루만에 일어났다.

깨자말자 기가 막혀서 찍은 사진이 아래에 있다.

아무튼 어디론가로 발을 뗀 것이 7월 3일이니,, 며칠은 아팠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게 나선 길이다.

고산지대였으므로 뛰거나 말을 하거나, 흥분을 하면 마치 삼장법사의 마법에 걸린 손오공처럼 두통때문에 머리를 감싸쥐어야만 했다.

나는 태어나서 가장 가지런한 몸과 마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새벽 버스를 타고 처음으로 간 어느 곰파(사원)에서 만난 스님.

스님을 발견한 순간부터 내가 그 자리를 나올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던....

저 창 밖에는 마른 땅과 마른 사람, 그리고 뜨거운 태양이 있었다.

스님이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면서 곰파 아래로 내려갔을 때,

도저히 어디에도 사람이 살지 않을 것 같은 곳이었는데, 아이들이 있었다.

물을 길으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 또한 나를 의아하게 생각했는 듯 했다.

그 길은 사람들이 걸어다니지 않는 길이었으니까...

나는 레스토랑에서 얻은 잘못된 정보, 혹은 알아듣지 못해서

걸어서 20분이면 된다는 길을 두시간째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인도의 위험지구라 간혹 지나가는 인도군인을 실은 군용트럭을 빼고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철갑을 두른 나무들이다.

저 나무는 왜 철갑을 두르고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왜 인지 생각도 못했다.

조금 뒤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서야 그 답을 알았다.

집을 지을 때 저 작고 가는 나무들이 서가래가 된다.

히말라야를 넘어서 목재를 가져온다는 것은 ... 그들로서는 너무 힘든 일일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버스가 온다는 곳까지...

내 발은 한겹 한겹 벗겨지고 있었다... 내 발...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이들이 내게 몰려왔다.

이상한가보다.

생긴 것도 이상하고 행색도 이상하고.. 거기와 어울리지 않는 어떤 이에 대한 관심.

참 똑똑한 아이들이었다.

그들과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손가락을 차례로 펴서 숫자를 세는 것 뿐이었다.

원, 투, 쓰리... 로 한 시간을 놀았다.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빨리 배웠다. 난 애들이 가르쳐준 숫자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장통에서 밥을 먹었다.

 

물약병...

 

다시 가고 싶은 곳 1등. 레

그때 결심한 것.

1.짚을 타고 절대 가지 않는다.. 델리에서 비행기타고 간다.

2.절대 아프지 않도록 몸을 만든다.

 

그곳은 마음이 아플겨를이 없는 곳이다.

몸이 그 곳에 맞추느라...

몸이 그 곳의 높이에 맞추느라...

마음 따위는 있지도 않는 듯한 곳이다.

혹시 마음이 아프다면, 그곳에서 며칠만 보내면 마음이 혼자 알아서 치유되는 그런 곳이다.

마음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가르쳐 주는 곳이다.

 

그때 나는 내 주위에 있었던 마음이 아픈 이들을 차례로 생각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들과 함께 다시 오기를 꿈꿨었다.

 

여행은 마음이 아플 때 맞으면 무소불위의 백신이라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다. 

 

3.

지금 가지 못하는 것은 대신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떠난다는 것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보면 '빔'을 말하는 것이다.

빔...비어있음...부재... 그것의 의미가 가장 약화되었을 때 떠날 수 있는 것이지.

 

그러고보면 여행자는 현재의 자리가 없는 사람이거나, 작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며,

그것은 어쩌면 부적응자라는 말과 억지스럽게 맞는 말이다.

 

한동안의 내가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재에서의 자리가 없었기 때문일까.

현재에서 설 자리가 없었기 때문에 그때 나는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역시 삶은 한치의 오차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내가 떠날 수 없음이 현재의 자리때문이라는 것과 맥이 같음을...

인간이란,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절망한다.

너무나 딱 맞는 계산 안에서만 살도록 신은 인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여행의 자리값과  현재의 자리값을 합하면 언제나 '0' 이 된다.

어디가 '-'값이고, 어디가 '+'값인지...체크하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여행을 이유없이 고대하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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