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밤 기차를 탔다.
누가 부산을 가면서 무궁화 밤기차를 타냐고 쓴 웃음을 웃었지만,
난 밤새 뭔가를 타는 것을 좋아한다.
밤새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가는 것도 좋았고
밤새 배를 타고 중국을 가는 것도 좋았었고
밤새 뭔가를 타고 멀리 간다는 것은 마치 국경을 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검은 경계를 넘는 것,
그것은 이 세상과 다른 명확하게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느낌이라서 그렇다.
일행은 남미여행을 함께 했던 후배들
한 명은 서울서 같이 출발, 한 명은 대전에서 합류, 한 명은 부산에서 우리를 맞았다.
이번 여행은 부산에서 근무하고 있는 그 중 한 명이 곧 전근을 갈 것이라고,
부산에 있을 때 부산 먹거리 투어를 시켜주겠다고..
그래서 떠난 길이었다.
험난한 길을 오랫동안 함께 했던 후배들이라 숨길 것도 새로운 것도 없는 터라 함께 해도 부담이 없다.
그것이 강제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그것 또한 경계를 넘는 것이다.
시간을 보내는 것은 경계를 넘는 것이다.
경계는 넓기도, 좁기도
경계는 높기도, 낮기도
시간은 넓이와 높이에 따라 그 값이 달라진다.
밤새 경계를 넘어 새벽 다섯시쯤 부산에 도착했다.
해운대역에서 걸어서 십분남짓한 거리에 해운대가 검게 깔렸다.
우선 근처 유명하다고 하는 복국집으로 가서 너무나 이른 아침을 먹었다.
밤새 기차에 시달려서 그런지 말간 복지리가 시원하게 온 몸으로 고루 퍼진다,
근무하고 그대로 달려 기차를 타고 오느라 절은 피로감이 나른나른, 노곤노곤해지는... 몸이 풀어진다.
부산거점후배는 해운대 모래를 질러 동백섬으로 안내한다.
이른 새벽 함성이 들린다.
해운대에서 열리는 겨울곰인가? 백곰인가? 아무튼 겨울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한 무리들이 기압을 섞어가며 준비운동을 한다.
멍하니 그들을 보았다.
바다에 들어가 1킬로도 넘어보이는 바다 한가운데까지 수영을 해서 간다.
수영해서 바다를 건너가다 바다 한 가운데서 쉬기도 한다.
바다 한 가운데서 쉬기도 했다.
쉬었다고 또 수영을 해서 바다로 간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도 또 그랬다.
저기가 오륙도인가?
설마... 하며 보는데 유람선 한 척이 그 섬과 동백섬 사이로 지나간다.
누군가가 앞에 보이는 섬이 오륙도란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 우네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목메어 불러봐도 대답 없는...
어쩌면 딱 그렇게도 딱그런지.
보이는 풍경안에 그 노래가 꽉 찼다.
조용필이 여기서 보이는 것 그대로 노래를 불렀는데, 그게 명곡이라면 명곡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남기는 것.
그것은 어쩌면 참 힘든 일일 것이다.
후배 사택으로 갔다.
우리들을 위해서 밤새 보일러를 틀어놓았다더니, 방이 찜질방 저리가라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정말 짧은 여정인데 우린 그 아까운 시간에 잠을 자기로 결정했다.
대전에서 합류한 한 후배는 당일 돌아가야 하는데도 말이다.
녹녹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자고 나니 점심때다.
너무나 잘 잤다.
완전 다시 셋팅되었다.
우리는 광안리로 걸어서 갔다.
해운대의 배경이 해운대 신도시의 높은 아파트, 높은 호텔들때문에 스카이라인이 가려져서인지 좀 답답했던 것에 비해
광안리는 광안대교가 뒷배경으로 있어서도 그렇겠지만,
모래사장너머 2차선도로와 낮은 건물들,
건물들에는 카페들이 쫙 들어서서인지 약간은 이국적인 휴양지의 냄새가 난다.
어느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종일 시간을 보내도 참 좋겠다 싶었다.
낮은 것들은 쉬기에 좋다.
점심은 밀락동 수산시장 옆의 일식집으로 갔다.
여기도 맘에 들었다.
좀 비싼 곳이었지만, 깔끔한 것이 어쨌든 집 떠난 여행자,,, 휴식,
이즈음이면 휴양차 온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난 휴양을 왔다.
점심식사 중
과속스캔들의 여주인공이름이 박보영이냐? 박보경이냐? 를 놓고 마주 앉은 두 후배가 실랑이를 벌이고
난 바람을 잡아서 내기를 붙였다.
커피 후식 내기!
그래서 럭셔리 커피를 마셨고,
한 명은 대전으로 귀가를 했다.
남은 여행자 둘과 다음날 이사 갈 임시 부산인이 남았다.
범어사를 갔다.
좀 불편한 신발을 신어서 제대로 필을 살리지는 못했지만,
생각보다 큰 절이었고, 개성있는 절이었고, 느낌 좋은 절이었다.
1킬로 좀 넘게 암자로 올라갔다내려왔다.
그러니 저녁먹을 시간.
부산에는 식육식당이라는 것이 제법 있는 듯했다.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식육식당에 대한 정보가 없는 지라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맛이 장난아니다.
쇠고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무슨 특수부위라고 하는 낙엽살, 제비추리, 치맛살... 등속들이 맛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니 최고의 육질이긴 한 모양이다.
서울에서 먹는 것치면 가격대비 너무나 훌륭하다.
후식으로 먹은 된장라면과 누룽지도 좋았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울릉도에서 먹었던 명이나물... 명이나물때문에 울릉도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명이나물이 그곳에 있었다.
향이 강하지 않는 명이나물에 싸먹는 쇠고기,
특이했다. 어울렸다.
반주로 APEC때 먹었다던 ??? 술, 백세주같은 것이 아주 부드러웠다.
다음날 이사를 해야 하는 후배의 집으로 돌아와 같이 이삿짐을 쌌다.
짐이라고는 승용차에 실을 것 밖에 없었지만, 암튼 수다 한 판, 짐싸기 한 판,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다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또 짐 한 판 싸고,
밀면을 먹으러 나갔다.
부산밀면, 먹어야지 먹어야지 하다가 결국은 먹게 되는군.
마치 얇은 쫄면 같다.
뭐 많이 다를 것은 없다 싶었지만 냉면보다는 훨씬 담백한 느낌. 가볍게 먹기에 충분했다.
부산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빵 몇 개를 사들고,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후배는 짐을 가득 실은 승용차로 새로운 발령지인 대전으로 출발하고, 우리는 KTX를 타러 부산역으로 왔다.
그리고 서울로 출발,
기차에서 한 잠 자고 나니 서울이다.
경계를 넘어가는 담은 높디높으나, 경계에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순식간이다.
서울에 도착하자 바로 사우나로 가서 개운하게 몸을 씻었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아주 짧은 부산여행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오직 몸을 위해 ...
생각해보니, 내가 내 몸을 위해 맛난 음식을 연달아 1박2일동안 먹어본 적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아니 끼니를 연달아서 챙겨먹은 것이 언제인가 싶었다.
개운하다 생각했다.
몸에게 뭔가 뿌듯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여행 중에는 몸을 혹사하고 혹사했는데, 정신이 가슴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힘들게 해야 여행을 한 듯이
긴 숨을 쉬었었는데...
이번 여행은
아마 내가 살아온 동안을 통틀어서 가장 많이 몸을 배려한 여행이 아닌가 싶다.
물론 동행들 덕분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 후배들은 이렇게 만났다 헤어지면,
또 한 동안 소식도 모르고 지낼 것이다.
각자의 일을 정신없이 하면서... 참 든든하다 싶을만큼 소신껏 저들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한 통 전화가 오겠지.
" 누나 우리 한 번 봐요!"
그렇게 일년에 한 두번쯤, 평생 한 스무번쯤 보면서 참 좋은 만남이었다 생각하겠지.
그러면서 나에게 핀잔을 주면서 긁겠지.
"누나 정말 재주없어!'
그럼 난 소심하게 속으로 되뇌면서 '내가 그렇게 재수없어? 그 정도는 아닐텐데...' 하겠지.
한 스무번 정도.
아.......................................................아....
부산여행.
무엇을 했냐고 묻는다면,
해운대를 걸었고, 동백섬을 걸었고, 오륙도도 봤고, 광안리해수욕장을 걸었고, 범어사를 올랐어.
그리고
15000원짜리 복지리를 먹었고, 25000원짜리 회일식을 먹었고, 1일분에 21000원짜리 쇠고기를 먹었고, 4000원짜리 밀면을 먹었고, 15000원짜리 애플파이를 먹었고, 3500원짜리 푸딩을 기차에서 먹었어.
부산에서 31시간 보냈어.
경계를 넘은 곳에서 31시간을 보내고 다시 경계를 넘어 이쪽 세상으로 넘어왔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31시간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듯한 시간이었어.
여전히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 뛰어야 했고, 적당히 야근을 할 일이 있는 월요일이었고,
퇴근 후 늦은 저녁으로 고구마 두개을 구워먹었지.
변하지 않았는데, 경계 건너편의 기억이 남아있어.
그것으로 ....
난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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