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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by 발비(發飛) 2009. 3. 4.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오규원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작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시를 읽을 때,

잠언 같은 시를 읽으면 힘이 든다.

내게 뭐라고 뭐라고 명령을 내린다.

명령을 들을 때마다 저항하는 나자신을 달래느라

혹은 납득시키느라

혹은 반항하느라

 

그것은 아직 내게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잠언같은 시가 읽히지 않을 때면 걱정할 것이 없다.

어떻게든 살아있는 것이니까...

 

오늘 아침 오규원의 [살아있는 것은 흔들리면서]를 읽으면서

단 한 글자의 저항도 없이

마른 솜에 물 스며들듯이 스며든다.

 

피하지 마라

빈 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아멘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은 단 한 군데도

단 한 순간도 없다.

바람을 맞는 사람이 느끼는 바람이 다를 뿐이다.

 

 

솜털같은 힘도 남아있지 않은 날, 찾아온 시.

 

 

 

 

-지금 딴 소리-

 

권정생선생님의 강아지똥을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대학교때인데,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라는 권정생선생님의 작품집이 있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몽실언니가 방영이 되기도 전이며,

강아지똥은 더더욱이 세상에 알려지기 전이었으니 무지 오래전이다.

꽤 두꺼운 작품집안에는 권정생선생님의 자서전, 소설과 동화 그리고 김현주 목사님과 오갔던 서간문들...

권정생 선생님의 온갖 것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아마 지금 이 책을 다시 편집해서 나눈다면 족히 10권이상의 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 책을 읽다가 처음으로 접한 [강아지똥]

지금 동화책으로 나온 [강아지똥]보다 연령대가 좀 더 올라간 버전이다.

9포인트도 안 될 듯한 작은 글씨들을 읽어나가는데.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데없는 것은 만들지 않으셨어."

강아지똥에게 하는 말이다.

그 순간에 느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난 나의 진로에 대해 무척 갈등을 겪고 있엇고, 삶의 대안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 때

내게 직격탄처럼 쏘아지는 에너지.

 

-지금 딴 소리 끝-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 똥]을 읽은 날처럼은 아니지만

난 오늘 잠언 같은 시에서 위로를 받는다.

 

손끝조차도 움직일 수 없다고 엄살을 부리는 중이었는데,

 

이 세상 모든 것들은 흔들리며

바람에 시달리며

그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는 시인의 또 다른 버전의 시를 읽으며

 

하느님은 이 세상에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듯이

시인 또한 이 세상에 쓸데없는 시는 한 편도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가끔 내게서 모든 에너지를 앗아가는 우주는

내게 솜털같은 가벼움을 선물로 주기 위해서 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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