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단추
손택수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3월이니 이제 곧 봄이다.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렸다.
어쩌면 시가 이리 이쁜지...
요즈음은 사라지고 없다는 봄처녀를 만난 듯하다.
무덤가에 찬바람든다고, 꽃이 핀다.
유난히 무덤가에 핀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의 마음쓰임새에 있었구나.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캄캄한 땅 속 제 구멍 찾아 겨울내 언 땅을 더듬었을 민들레, 차고 시린... 그 마음을 알고 있는 거구나.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하늘과 땅은 얼마나 가까운지.. 또 얼마나 먼지... 함께 하는 것이니 슬퍼하지 말라고, 살 붙이라고...조금의 틈도 없이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놓았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그 손 놓지 말라고 꽃줄기로 탱탱히 감아놓은... 찬찬히 감아놓은 작고 여린 꽃의 마음
......
이제 곧 사방에 피어날 민들레를 볼 때마다 이 아름다운 시가 떠오를 것 같다.
하늘과 땅을 여며주는 민들레.
사방 하늘과 땅으로 집이 나뉘어, 이별하고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별한 것이 아니라고
하늘과 땅이 딱 붙은 거라고.
혹 느슨해져서 틈이라도 생길까봐 해마다 민들레꽃 피워 틈을 메워주는 거라고...
틈 메우려고 파병된..
참 아름다운 것들이라고...
이 길로 나가 어느 산자락이든 피어있을 민들레를 찾아 보고 싶다.
톡톡 건드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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