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 발송 중인 파일만 도착하면 퇴근한다.
길을 바로 옆에 둔 좀 높은 1층에 산다.
이사한 뒤 비가 오는 날이면,
언제나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들린다.
비가 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게 되는데, 그래서 착각한다.
이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내리는 빗소리처럼 들린다.
오늘은 비가 오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을비는 언제나 마지막을 찍어준다.
눈을 뜨자 들리는 빗소리가 슬프게 들리는 것은 가을비라서...
봄비는 꽃을 피우며 잎을 돋게 하고
여름비는 꽃과 잎들을 살찌운다.
가을비는 그것들을 낙하시킨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스미게 한다.
가을비가 내렸다.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노랗고 빨간데... 그것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남아있는 것들은 위태하다.
그 길을 걸어 출근을 할 때까지 비는 내렸고,
난 비가 오는 오늘만 기억한다.
늦은 시간
업무상 보내는 메일의 양이 많아 그것이 다 도착할 때까지를 기다리며... 앉아있는 사무실이 썰렁하다.
모두들 퇴근한...
그래서 적막한..
빗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마치 새로 이사간 나의 집에서 듣던 그 빗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니 비가 내리고 있다.
비는 어차피 이 건물 밖에서 내리고 있는 것이고,
건물 안에 있는 난 비가 오는 아침에 이별한 그 거리에 그냥 있는 것이다.
난 아침 그 시간에 나를 비오는 그 거리에 두고 들어온 것이다.
유난히 정신없었던 하루,,,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아홉시를 넘긴 시간.
시간을 체크한 순간 빗소리를 들었다.
난 아직도 그 시간, 그 곳에 있는 것이다.
마치 가을비가 끌고 가려고 남겨둔 나뭇잎처럼 난 앙상한 사무실에 남아 빗소리를 듣는다.
지금 이 건물을 나가면 비가 그친 것도 확인하게 될 것이고, 마른 땅이 된 것도 확인하게 되겠지.
그렇더라도 난 아침에 비내리는 그 곳에 서 있는 나를 챙길 것이다.
가방을 챙기고,
주말을 보낼 물건들을 챙기고,
읽을 거리, 볼 거리를 챙기고,
기억을 만들어 낼 것들을 챙기고...
그것들을 모두 챙기는 것처럼 난 거리에 서 있는 나를 툭쳐서 가자고 말할 것이다.
이 건물을 나가면....
가을비에도 떨어지지 않고 가만히 그 곳에 서 있는 나를 챙겨서 집으로 갈 것이다.
집으로 가기를 기다리던 나를 데리고...
사람은 참 자유로운 동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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