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를 존중하는 출판과 문화(출판문화 2008.8월호) 중에서
허병두(숭문고등학교 교사)
저자는 출판을 성립하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주체다. 실체로 저자는 지적 재산권의 소유자로서 저작권이라는 법적 보호 또한 받는다. 하지만 최근 우리의 경우는 저자는 이렇게 저작권의 범주에서나 보호 받는 정도에 머무르는 듯 싶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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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단지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원천 기술 보유자가 아니다. 또는 그마저 주기 싫으면 안줘도 되는 하청업자, 언제라도 갈라설 수 있는 사업 파트너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해당 언어를 가장 예민하고 풍부하게 구사하는 창조자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 안팎의 삶을 좀더 윤택하고 풍요롭게 바꾸는 영혼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든지 저자는 존경받는 큰스승이요, 공동체의 위험을 알리는 파수꾼, 새로운 개벽을 준비하는 창조주다, 그러기에 저자의 언어가 응축되어 물적 형태로 나타날 때 우리는 그 공간을 '책' 이라 신성하게 부르며, 그를 찾아내고 북돋고 뒷받침하며 널리 알리는 행위를 자랑스럽게 '출판'이라 말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하는 방향에 눈을 돌리고 함께 걷고 호흡하며 나서는 새로운 저자들을 우리는 '독자'라 부른다.
물론 저자 또한 그에 걸맞는 고귀한 품격과 행동을 갖춰야 한다. 정보화의 물결에 당당하게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무엇이 진정한 가치이고 바람직한 삶인지 늘 고민하면서 자신만의 언어로 드러내야 한다. 자신을 저작권 수입 소득자로 전락시켜서는 곤란하며 언제나 새로운 고민하고 바람직한 삶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의 언어가 아니라 영혼으로 다가오는 삶이 정수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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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출판쪽에 발을 디딘 곳은 일반 출판사의 성격과는 좀 다른 곳이었다.
출판의 메이저급은 아니었지만, 변방이라는 말이지.
그렇지만 그곳에는 수백명의 문학인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들...
출판이야기보다는 저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더랬다.
난 그들이 어떻게 쓰는지를 옆에서 보았다.
물론 최고의 문인들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이건 사회적인 잣대로 말이다) 그들 한 분 한 분이 한 편의 시 혹은 소설을 생산해내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노라면 작품의 레벨을 거론하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문학작품에서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생산해내기 위해 작가가 했을 수고로움,
자신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기쁨이었던 것들, 상처였던 것들을 숙성시키고 이해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내어야만 했을 수고로움,
그 수고로움에 대한 경의!
그것은 작품이 짙으면 짙을수록 그 수고로움은 깊이 와 닿는다.
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문학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을 통해 정제된 자신을 충실히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오늘 아침
출판문화협회에서 나온 정기간행물은 '출판문화'를 뒤적이다가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책의 원천인 저작물에 대한 얼마만큼의 경의를 표하고 있었는지?
혹은 책을 만들다보니 만나느니 모두 저자라 그들에게 처음 책을 읽었을 즈음의 작가에 대한 경의를 유지하고는 있었는지?
그런 믿음을 저자들에게 주는 편집자였는지?
하는 생각을...
책의 주인은 저자와 독자이며
그 둘이 좋은 만남을 가지도록 연결시켜주는 것이 편집자이다. 중매장이다.
좋은 저자를 찾아서 좋은 저자를 알아볼 수 있는 독자에게 소개시켜주는 일, 그것도 잘 소개시켜주는 일, 도모하는 일.
난 운좋게도 그 일을 하고 있다.
좀 힘이 빠지려고 하는 이 때에 적절한 글 한 편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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