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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구로디지털역 3번 출구 9시 45분 9시 45분, 이후 3분간

by 발비(發飛) 2008. 11. 11.

 

1.

 

신도림방향에서 출발해서 구로디지털역으로 가는 전철 4-2 문 앞.

서서히 전철이 멈췄다.

내리려고 준비를 하며 바라보던 바깥 풍경...

풍경 한 자락에 눈이 멈췄다.

전체로 보면 잿빛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내게 각인된 색은 펄감이 있는 보랏빛... 보랏빛 사이로 비쳐진 붉은 빛이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구로디지털 전철역 4-2번 문 앞에...

3번출구로 난 계단은 비둘기가 누워있는 쪽이었지만, 못 본 척하기 위해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왔다.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오는데,

비둘기의 깃털에서 보았던 보라빛 펄이 좀 전보다 더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내 뒤에 눈이 달린 것처럼 죽은 비둘기의 반짝 거림이 느껴졌다.

석양에 비친 부석사의 목어가 생각났다.

 

2.

 

구로디지털역 3번 출구 계단을 내려오며 윌아줌마를 찾았다.

요즘 앓고 있는 위통, 병원약을 먹으며... 윌을 같이 먹고 있는데... 윌아줌마가 없다.

없다.

그것은 위통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온 허전함.

많이 허전해하며 계단을 내려오는데, 그 허전함의 주소가 달랐다.

윌아줌마가 아니라... 3번출구 앞에 길게 늘어섰던 포장마차가 없어졌다.

이 곳은 아침부터 순대며, 떡뽁이며, 토스트며...두유를 먹을 수 있는 곳이고

밤이면 순대며, 떡뽁이며, 오뎅이며 그런 것들에 소주 한 잔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모두 사라졌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길게 늘어서있던 포장마차들이 사라졌다.

길은 넓었다.

포장마차들이 놓여져 있던 아스팔트의 색이 유난히 검다.

그 길을 걸어..포장마차가 보이지 않는 쪽 골목으로 커브를 돌았을 즈음

내 뒤에서 진하게 풍기는 순대와 떡뽁이 냄새가 났다.

마치 등에 코가 달린 것처럼 선명한 냄새를 맡았다.

사나사 들어가던 길, 주인없는 듯 보이던 감나무에 달린 붉은 홍시가 생각났다.

 

3.

 

요즈음 라디오 소설극장이라는 라디오 프로 파일을 다운받아 출퇴근길에 듣고 있다.

오늘은 어느 해에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된 작품을 들었다.

작가는 20살때부터 신춘문예에 10년동안 응모했던,

가난한 작가였다.

그가 쓴 소설은 수를 놓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여자의 남자는 여자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아이 가진 여자를 버려두고 자아를 찾으려 몸부림치다 스님이 되었고,

뇌졸증으로 쓰러진 여자의 아버지 앞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또 다른 남자는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하고...아버지의 옛 흔적이었을 남자,

여자는 여자의 남자에게 받은 상처를 목어를 수놓으며 달래고,

완성된 수놓은 목어는 목어처럼 비어보이는 아버지의 흔적이었을 남자에게 주었다.

 

 

4.

 

겨울 해는 어느 계절보다 밝아 눈부시다.

너무 밝아 세상 것들이 숨김없이 보였던 아침 9시 45분, 이후 3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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