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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박상순] 아름다운 별,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 해도

by 발비(發飛) 2008. 7. 22.

아름다운 별,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 해도

 

박상순

 

나는 약해

금세 기절하고 말거야

 

약하다니까

 

처음 본 순간

별이 달에게 겁을 준다

 

그래도 달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바닷물을 끌고 와

 

해변을 덮어버린다

 

나는 약해

금새 기절하고 말거야

다 잠기고 말거야

 

약하다니까

 

그래도 달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어둔 하늘을 끌고 와

 

별을 덮어버린다

 

 

 

 

 

 

지난 가을 현대시학에 실린 '아름다움 별,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 해도' ...

 

달일까? 별일까?

 

나는 약해

금세 기절하고 말거야

 

지금 난 그래...

나는 약해 금세 기절하고 말거야! 이대로라면 기절하고 말거야!

 

처음 본 순간

별이 달에게 겁을 준다

 

 

처음 그?를 만났던 때가 언제였더라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쯤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있었던 어느 오후였다.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그 아래 모래밭을 손으로 파고 있었다.

두 다리를 철봉에 걸어두고

두 손으로는 모래를 하염없이 파다 노란 10원짜리 동전과 몽당연필을 발견했을 때,

이런 것들이 누군가의 흔적일 것이라고 처음 생각하였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 나와 같지 않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그래서 다리에 힘이 풀렸고, 난 철봉에서 떨어졌다.

모래에 어깨가 긁히고 팔꿈치가 긁혔다.

피가 났다.

 

그래도 달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바닷물을 끌고 와

 

해변을 덮어버린다

 

 

그 후 그?는 가끔씩 내게 나타났다.

그때마다 난 다쳤다.

중학교때, 뒤에 앉았던 아이가 모나미볼펜으로 하얀 교복아래 비치는 브래지어 끈을 하염없이 꾹꾹 눌러대던 날

그 아이에게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 내 손을 볼펜으로 꾹 더 세게 누르며 그 아이가 누른 볼펜 느낌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었다.

내 손에서 피가 났다.

내 교복등판에는 파란 볼펜 자국이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아마 그때부터 난 그? 가 그 아이와 같은 얼굴일거라고 생각을 했다.

 

아주 가끔 그랬다.

대부분의 날은 그?가 내게 오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나타나지 않아도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약해

금새 기절하고 말거야

다 잠기고 말거야

 

약하다니까

 

이런 식이라면 난 버틸 수 없어. 내내 나타났다.

어른이 된 어느날 신부님을 찾아 갔었지.

"왜 내게 그?가 자꾸 나타나는 것일까요? 그?가 나타나면 왜 나는 다치는 것일까요?"

신부님께서 말씀하셨지.

"그 분은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시니까요...

그 분의 사랑이 깊은 만큼 당신의 십자가는 큰 것입니다. 당신은 커다란 십자가를 가지실거예요."

다시는 신부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금새 기절하고 말거야

...

...

 

그래도 달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어둔 하늘을 끌고 와

 

별을 덮어버린다

 

그는 언제나 내 옆에 있다. 그렇지만 언제나 모른 척한다.

 

삶이라는 이름으로 ,

혹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삶 혹은 운명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내게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삶 혹은 운명의 첫번째 인식, 그것은 타인의 삶 혹은 운명에 대한 인식의 순간과 맞아 떨어진다.

삶 혹은 운명은 타인과 함께 몰려왔다.

 

난 은하계너머 있는 별,

또는 히말라야 어느 하늘에서 내 머리 위에서 솟아올라 내 발 아래로 떨어진 별똥별.

 

달빛이 환한 날이면,

그래서 모래밭에 노란 동전과 몽당연필 또한 환하게 보이는 날이면,

난 검게 사라진다. 묻힌다.

내 몸은 검게 굳은 피로 캄캄해진다.

 

나는 약해

금세 기절하고 말거야

 

아름다운 별,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해도... 가 아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그 말...은 아니다. 싫다. 거부한다.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해도, 

나는 멀리서... 그냥... 가만히... 온전히 있고 싶을 뿐이다.

 

작은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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