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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수영] 장시 1

by 발비(發飛) 2008. 7. 15.

장시

 

김수영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

복숭아 가지나 아가위가지에 앉은

배부른 흰새모양으로

잠깐 앉았다가 떨어지면 돼

연기나는 속으로 떨어지면 돼

구겨진 휴지처럼 노래하면 돼

 

가정을 알려면 돈을 떼어보면 돼

숲을 알려면 땅벌에 물려보면 돼

잔소리날 때는 슬쩍 피하면 돼

-채귀가 올 때도-

뻐스를 피해서 길을 건너서는 어린놈처럼

선뜻 큰 길을 건너서면 돼

장시만 장시만 안 쓰려면 돼

 

*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입만 반드르르하게 닦아놓으면 돼

아버지 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어물전 좌판 밑바닥에서 결어있던 것이면 돼

유급합승자동차에도 양계장에도 납공장에도

미곡창고 지붕에도 달려있는

썩은 공기 나가는 지붕 위의 지붕만 있으면 돼

[돼]가 긍정에서 의문으로 돌아갔다

의문에서 긍정으로 또 돌아오면 돼

이것이 몇 바퀴만 넌지시 돌면 돼

해바라기 머리같이 돌면 돼

 

깨꽃이나 샐비어나 마찬가지 아니냐

내일의 채귀를

죽은 뒤의 채귀를 걱정하는

장시만 장시만 안쓰려면 돼

영원만 영원만 고민하지 않으면 돼

오징어 말라붙은 새처럼 오월이 와도

구월이 와도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울리면 돼

라디오소리도 거리의 풍습대로 기를 쓰고 크게만 틀어놓으면 돼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서

장시만 장시만 안 쓰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콩콩 울리면 돼

흙묻은 비옷이 24시간 걸려있으면 돼

정열도 예측 고함도 예측 장시도 예측

경율도 예측 봄도 예측 여름도 예측

범람도 예측 범람은 화려 공포는 화려

공포와 노인은 동일 공포와 노인과 유아는 동일...

예측만으로 그치면 돼

모자라는 영원만 있으면 돼

채귀가 집으로 돌아가면 돼

성당으로 가듯이

채귀가 어젯밤에 나 없는 사이에 돌아갔으며 돼

장시만 장시만 안 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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