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없는 부처 앞을 지나다
신현정
저 목 없는 부처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할 수만 있다면
내 목이라도 달랑 올려놓았드렸으면 하다가
주위에 흩어져 돌들을 주먹만한 것으로 골라서는
한 백팔 개 정도 한 줄로 공손히 쌓아올려드렸으면 하다가
하다가 다람쥐라도 올라앉지 않겠나
다람쥐, 금빛꼬리를 치켜올리고 도토리라도 까먹지 않겠나
잠자리라도 날개를 파르르 눕혀놓지 않겠나 하다가
하다가 차라리 목 없는 거 오히려 편할 수도 있겠다 하다가
그냥 가던 걸음 빨리해 지나쳐버렸다
하, 지나치고 보니 그거, 그거, 목도 목이지만 진작에 진작에
목없는 가슴아래 잠잠히 모으로 있는 나비 자물통 같은 손부터
홀가분하게 풀어드렸어야 했던 건데.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스티나 로제티] 오르막길 (0) | 2008.07.31 |
---|---|
[박상순] 아름다운 별, 네가 나를 영원히 사랑한다 해도 (0) | 2008.07.22 |
[김수영] 장시 1 (0) | 2008.07.15 |
[최승호] 돌의 맛 (0) | 2008.07.15 |
[최승호] 아무 일 없었던 나 (0) | 2008.07.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