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
김수영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 돼
복숭아 가지나 아가위가지에 앉은
배부른 흰새모양으로
잠깐 앉았다가 떨어지면 돼
연기나는 속으로 떨어지면 돼
구겨진 휴지처럼 노래하면 돼
가정을 알려면 돈을 떼어보면 돼
숲을 알려면 땅벌에 물려보면 돼
잔소리날 때는 슬쩍 피하면 돼
-채귀가 올 때도-
뻐스를 피해서 길을 건너서는 어린놈처럼
선뜻 큰 길을 건너서면 돼
장시만 장시만 안 쓰려면 돼
*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입만 반드르르하게 닦아놓으면 돼
아버지 할머니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어물전 좌판 밑바닥에서 결어있던 것이면 돼
유급합승자동차에도 양계장에도 납공장에도
미곡창고 지붕에도 달려있는
썩은 공기 나가는 지붕 위의 지붕만 있으면 돼
[돼]가 긍정에서 의문으로 돌아갔다
의문에서 긍정으로 또 돌아오면 돼
이것이 몇 바퀴만 넌지시 돌면 돼
해바라기 머리같이 돌면 돼
깨꽃이나 샐비어나 마찬가지 아니냐
내일의 채귀를
죽은 뒤의 채귀를 걱정하는
장시만 장시만 안쓰려면 돼
영원만 영원만 고민하지 않으면 돼
오징어 말라붙은 새처럼 오월이 와도
구월이 와도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울리면 돼
라디오소리도 거리의 풍습대로 기를 쓰고 크게만 틀어놓으면 돼
겨자씨같이 조그맣게 살면서
장시만 장시만 안 쓰면 돼
오징어발에 말라붙은 새처럼 꼬리만 치지 않으면 돼
트럭소리가 나면 돼
아카시아 잎을 이기는 소리가 방바닥 밑까지 콩콩 울리면 돼
흙묻은 비옷이 24시간 걸려있으면 돼
정열도 예측 고함도 예측 장시도 예측
경율도 예측 봄도 예측 여름도 예측
범람도 예측 범람은 화려 공포는 화려
공포와 노인은 동일 공포와 노인과 유아는 동일...
예측만으로 그치면 돼
모자라는 영원만 있으면 돼
채귀가 집으로 돌아가면 돼
성당으로 가듯이
채귀가 어젯밤에 나 없는 사이에 돌아갔으며 돼
장시만 장시만 안 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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