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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최승호] 쌍봉낙타

by 발비(發飛) 2008. 6. 27.

쌍봉낙타

 

최승호

 

만약 내가 야생 쌍봉낙타였다면 그리고 늙은 수컷이었다면 혼자 사막을 떠돌아다녀야 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든 그게 그거인 사막에선 나는굶주림을 방황으로 달래며 막막한 시간을 죽여야 했을 것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그렇다고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사막에서 높은 것은 나의머리, 낮은 것은 발바닥, 보다도 그게 그거인 사막에서 눈은 텅 비어 있는 먼 곳을 날마다 바라 보아야 하지 않았을까.

 

고개를 숙이면 돌, 모래, 시든 풀, 그리고 고개를 들면 눈부신 뙤약볕이 이글거리는 적막 속에서 나는 고개를 늘어뜨리고 느릿느릿 걸어가다가 언젠가 내가 쏟아놓은 똥무더기를 발견하고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 갑자기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울었을지도 모른다.

 

여름철이면 털빠진 내 모습은 너덜너덜한 걸레나 다름없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털들, 그것들은 다 바람이 뽑아갈 털이다. 해마다 털갈이를 거듭하다보면, 그리고 고독에도 익숙해져서  돌아다니다보면 어느덧 나는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많이 늙어있다, 사막이 늙지 않는 것은 죽은 땅이기 때문이다. 물의 탯줄들이 말라버린 땅, 죽은 땅은 한낮에 무척 덥다

 

긴 목마름 속으로 키 큰 고독이 또 걸어온다. 뙤약볕 속에서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는 쌍봉낙타 한 마리를, 나 역시 고개를 들고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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