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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최승호] 별똥별

by 발비(發飛) 2008. 6. 26.

별똥별

 

최승호

 

1

별똥별이 떨어진다

그것은 적막을 가르며 적막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인다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의미 있는 것에서 의미를 지워버린다

사막의 초대는 그렇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을 보고

이빨이 남아 있을 때 허무를 물어뜯어 보라는 것이다

모래에 귀를 파묻고

모래들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는 것

더 나올 눈물 없는 해골들과 한바탕 웃어보는 것

사막의 초대는 그렇다

일찍이 크게 죽은 낮은 자들을

하늘에 반짝이는 심연을

마음의 바닥없는 바닥을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별동별이 또 떨어진다

그것은 밤의 적막을 가르며 적막 속으로 떨어진다

허공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상처, 어두운 기억의 문짝이 열릴 뿐이다

누군가 오래 전에 죽었다

그는 죽고 싶을 때 죽었다

이제는 이름뿐인 무

어떻게 나는 아직도

텅 빈 무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2

별똥별이 떨어진 뒤에

그러니까 한 존재가 불타 흩어진 뒤에

재들은 재 냄새를 풍기겠지만

허공은 코가 없다

허공의 숨소리

그 소리를 내가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둠 속에 불타는 꼬리별들과

바다 밑 운석들의 묘지

별똥별이 떨어진 뒤에

그 별똥별이 당신이고 나라면

우리에게 무슨 묘지 무슨 고향이 있는 것일까

허공이 무변의 눈알이고

밝음이 허공의 눈빛이라 해도

우리가 죽어 허공으로 펼쳐진다 해도

허공은 돌아갈 고향이 없다

별똥별이 돌산 너머로 또 떨어진다

 

 

저 너머에 세상이라는 곳이 있다.

별똥별이 떨어지면 한 생명이 떨어지는 거라던데...

도무지 무엇이라고는 없는 사막에 누워

도무지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보고 있으며.

머리 꼭대기쪽에서 발아래쪽으로 길게 줄을 그으며 별똥별이 떨어진다.

 

머리꼭대기쪽에서 살던 한 생명이

발아래쪽 세상으로 위치 이동을 하는 것이다.

 

저 너머 세상

저 너머 세상

 

내가 누워있던 사막 한가운데는 세상이 아니다.

사막에서의 죽음은 죽음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ㅈ ㅜ ㄱ ..ㅇ..ㅡ.....ㅁ

의 속도보다 더 느리게 서서히 건조되어가는 것.

그래서 별똥별로도 생산되지 않는 곳이다.

 

증발된 세상

 

상처없이 죽는 곳이다.

누가 누구에게 물어뜯기거나,

누구때문에 이거나 그런 일은 없다.

다만 서서히 말라가는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면서 긋는 하늘의 한자락 상처 조차 허용하지 않는 곳이 사막이다.

 

건조함.

증발.

 

그것은 사막 한 귀퉁이 혹은 한 가운데에 쓰러져 죽은 낙타의 시체를 보면 안다.

 

그것은 사막 한 귀퉁이 혹은 한 가운데에 쓰러져 죽은 아크라나무의 마른 가지를 보면 안다.

 

그것들이 얼마나 서서히 말라 죽어갔는지.

서서히 말라 죽는다는 것은 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몸에서 수분을 날리고

그래서 몸만 남는 것임을

사막에 가면 알게 된다.

 

몸만 남게되면 이제 바람의 몫이다.

오로지 몸만 남게 되었을때 바람은 허공에 몸을 날린다.

저너머 세상과 이쪽 세상의 경계도 없이 몸을 펴 날린다.

흩날린다.

 

별똥별은 새벽이 올때까지

머리위쪽에서 발아래쪽 세상을 쉼없이 떨어지던 그 곳,

이 세상도 아니고 저 세상도 아닌 곳에서 그 어디...쯤.. 에서 보는 세상은,

사는 사람들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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